2024. 7. 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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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진 않지만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초·중·고 학창 시절, 시험 점수 1, 2점 차이로 울고 웃으며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저자는 뜻밖의 질문에 당혹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 이 공부를 왜 하는 거지?” “대학은 왜 다니는 거지?” “대학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지?” 지난 20년간 공부하며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질문을 그제야 하게 되는데...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방향으로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저자
최영원
출판
모모북스
출판일
2024.07.16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대학교에 가면 지금은 많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철학과가 있다. 사실 대체 그 과는 왜 있을까 의문이긴 했다. 30대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을 텐데, 정신없이 경쟁사회에서만 투신한 나머지 정작 '나다운 것'에 대한 정의를 한 번도 고민해 보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는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목표를 잃거나 하는 문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좋은 대학교를 들어가면 세상이 나를 우대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물론 서울대를 갔으면 좀 달라졌으려나?) 그럼 대체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

 

10대는 사실 부모의 의견대로 간다고 치자.

그러면 20대 때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이제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 나가면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이 된다. 특히 최근 사회의 모습을 보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어떤 회사에 종속이 되거나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스스로 기업을 만들거나(스타트업) 유튜버와 같이 혼자서 하는 프리랜서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당장 내 주변에도 유튜버가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유명하고 확인된 직업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졸업장은 어쩌면 그저 타이틀이나 인맥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다운 것을 알게 되려면...

스스로에게 관대해 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비교'라는 것을 하고 자란다. 당장 예쁘고 잘생긴 것을 '절대 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란 우리에게 못나고 불필요한 것은 그저 '악' 일 뿐이다. 부모조차도 아이의 이성 친구를 만나게 될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친구의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니? 어디 살고 있니?'부터 물어보게 된다. 이러한 비교는 사실 경쟁심을 유발하며 성장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자존감을 파괴하는 문제로 발전되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이다.

 

일하는 것도 세상이 바뀌었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 좋은 대학교 좋은 회사를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 듯 하다. 당장 부모님 세대의 자랑은 내 자식의 대기업 취직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서 좋은 기업, 결혼, 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바뀔 필요가 있다(물론 나는 그래도 결혼과 출산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다. 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라고 할까?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부분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편으로는 잔잔한 느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삶이 뭐랄까, 딱히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많은 고민을 달고 살고 있구나, 한편으로는 정말 배가 부른 고민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저 고민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결국 소위 '밥 안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내 삶은 과연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는데, 당장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을 하고 있다.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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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2. 1. 1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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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는 나쁜 것일까?

우리는 흔히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을 개인주의자라고 한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이런 개인주의를 굉장히 '극혐'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생각이나 가치관을 부러워하면서도 동양에서는 '그래도 우리가 한민족 아니가?'라는 말로 전체주의적인 생각을 많이 요구한다. 당장 학교를 봐도 회사를 봐도 항상 나 혼자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사상이 조금 바뀐 것 같다. 개인주의가 나쁘냐고 물어보면 나쁘다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결론이 나고 있지 않나 싶다.

 

개인주의가 나쁘다고 평가받는 것은...

사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이기주의' 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주의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지 다른 사람이 값어치가 떨어진다던가 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게 되고 내가 꼭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같이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이 사라지게 되면 개인주의는 발달하게 된다. 서양에서 먼저 발달하게 되었던 것도(사실은 발달이라기보다는 원래 있었는데 외부로 나오게 되었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 맞겠다) 우리보다 먼저 풍요로움을 맛보아서 일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가?

철학적인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가장 인상깊은 것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의 이야기이다. 뭐 다 아는 이야기다. 물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사랑한 나머지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혹자는 멍청한 놈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도 있겠지만 나도 충분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을 탐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하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을 바라보면서 다이어트나 옷을 따라 하는데 정작 그 워너비인 연예인도 또 다른 워너비를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발생되는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삶의 이야기는 내 손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

과거 병들 중에 가장 병으로 인정받기 힘든 것이 '정신과' 쪽 질병이었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마다 가지각색인데 어떻게 정의하기도 애매하고 의사랑 상담 받기도 애매한 과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사실 정신적으로 약한 시점이 오게 되어 있다.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서 아픈지 모르고 지나갔었다. 당시에는 내 삶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삶의 이야기는 내 손으로 직접 '나의 삶'이라는 것을 쌓아 올려야 한다고 생각이 된다. 

 

당신은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빛이 난다.

죽어야 되는 사람은 없다.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없지만 개인적인 철학이긴 하다. 주변에 실제로 삶을 비관한 나머지 포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 주지 못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굉장히 유리알 같은 존재로서 자그마한 것 하나에도 화를 내거나 반대로 간단한 말 한마디로도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갖게 되기도 한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개인주의적으로 스스로에게 칭찬 한 번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니체의 이야기가 책에서 가득하게 나오지만 읽기는 어렵지 않았던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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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1. 10. 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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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시작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불행한 그 시점에 정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머피의 법칙과 같은 날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쩌면 자살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냥 '자살해 버렸네요'라고 하면 내용이 진행될 수 없으니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도서관으로 그녀, 노라가 움직이게 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달러 구트의 경우 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묘하게 몽환적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역시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정말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할까?

 

만약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노라는 지금 당장 보면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결혼도 포기했고 수영도 포기했으며 음악도 포기를 했다.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것이 없고 다 원래의 삶에서 도망쳤다. 왜 도망쳤을까? 단지 걱정이 많고 쉽게 포기해서 그런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일반적이지 않은 결정을 하곤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문제일까? 아니다. 사실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쉬웠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고민 끝에 결정을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결과는 좋지 않았고 노라는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살을 하기 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피면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묘하게 말이 안 되면서도 되는 거 같은 느낌이다.

 

다른 삶이 항상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욕망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연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이 진짜 욕망인가? 유명한 가수가 되어 보기도 하고 펍의 주인이 되어보기도 하며 수영선수가 되어 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해피엔딩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결과는 썩 탐탁치 않다. 아버지가 외도를 하거나 과거의 연인이 스토커가 돼서 돌아오기도 하며 오빠가 단명을 하기도 한다. 그것을 원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 책 속에서는 그렇게 내용이 흘러간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게 나오는 책은 없느냐고? 당신의 인생이 그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뭔가 읽으면서 '행복 총량의 법칙'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했다. 많은 것을 얻으면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의미 같았다.

 

진짜 내 욕망을 알았을 때.....

이것이 진짜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과연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내게 오기만을 바라볼 것인가? 사실 움켜쥔다고 하는 것이 맞긴 하겠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움켜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노라도 본인이 꿈꿔왔던 꿈 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던 꿈에 안주하려고 하다가 다시 도서관을 나왔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을 가져왔다. 사실 결국 그것 조차도 '가정' 일 뿐이다. 현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가장 아름답게 살 수 있지만 그곳에서 노라는 과거를 모르는 하나의 사람일 뿐이었다. 적응하고 싶지만 그들과 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것이 없는 삶. 도서관에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과거부터 이어오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살을 취소!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을 때

그녀는 삶에 대한 간절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우리도 역시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사람들은 뭐든 긍정적이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녀는 이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게 된다. 과거는 어떻게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교훈이다. 도서관 사서였던 엘름 부인에게 찾아간 다음 감사함을 느끼고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노라는 어쩌면 미래가 어둡다고 불평만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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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1. 5. 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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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은 책으로 쓸만합니까?

예전에 이러한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런 생각을 했다. 대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일을 겪어가면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는데 내가 알고 있던 나의 주변 사람이나 나는 정말 책에서 보던 일이 발생한 적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게 보자면 그만큼 평온하게 자라왔다는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스스로 성장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것이겠다. 그러다가 사회에 나와서 결혼도 하고 인생을 살다가 보니 어라? 생각한 것보다 내가 사는 인생도 책으로 쓸만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이러한 우여곡절이 너무 많이 생겨나고 인생이 고달파서 가끔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되는가에 대해서 하늘에 원망도 많이 해 본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상황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자들은 굉장히 감성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에세이 류의 책을 읽어보면 솔직히 90% 이상 여자분들이 작성한 글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읽어보면 정말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정말 글로서 표현을 잘했다고 할까? 여성이 우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고 표현을 잘한다는 의미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2030 세대에 인생 최대 고민인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 앞에서 조금은 태연하게 조금은 생뚱맞게 행동을 보여주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가장 큰 아픔의 시기이자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라고 할까? 물론 그러는 사이에 저자는 신춘문예를 계속 떨어지다가 의외로 문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 시기를 극복하게 된다.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다른 능력도 발현되는 것일까?

 

영화의 한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난다.

난 사실 영화에 관심이 없다. 남들 다 본 영화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얼마 전에 큰 상을 받았다고 했던 '미나리'와 같은 영화는 사실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과거 10여 년 전 이전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가끔 지나갈 때가 있다. 영화를 보기 싫어서 안 보는 것은 아니라 그 영화를 볼 시간조차 지금은 너무 없기도, 아깝기도 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나는 것은 내가 걸어왔던 그 길과 너무나 비슷해서 데자뷔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내가 상상했던 그런 장면이 기억에 남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다양한 생각을 정리하였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본 영화가 얼마 없지만 인상 깊었던 그 장면들이 가끔 삶이 힘들면 불쑥불쑥 나타난다. 그 영화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겠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말이 없이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고 화자가 되고 있는 최고의 배우 중 하나인데 이 멘트가 항상 생각이 많이 난다. 군대 생활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제대하는 날 과거를 돌아보면서 당시에는 그렇게 비극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그때는 정말 웃긴 희극과 같이 기억이 남게 된다(주변에 물어보니 나만 그런 것으 아닌 듯하다) 첫사랑의 추억도, 결혼 전 마지막 전 여자 친구의 추억도 바로 그런 추억으로 남겨지겠지(물론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평생 아픔이나 행복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희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희극을 만들기 위해 처절하게 비극적인 상황을 반복하고 있겠지만.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우리는 단순히 나이로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사이를 딱 구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른이면서도 아이 같은 사람이 있고 아이면서도 어른 같은 사람도 있으니 참 오묘하다. 사실 위로는 어른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는 그래도 복원력이 빠르고 쉽게 잊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내일 더 즐겁고 새로운 일이 무궁무진하니까. 하지만 어른은 그런 것이 적어진다. 삶이 안정화되길 바라면서도 그 안정이 불편한 경우도 많다. 이제 어른의 시간이 시작되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고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너무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여유를 갖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프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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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1. 4. 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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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솔직해지자.

최근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공동체로만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적정한 삶' 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코로나 블루라고 하여 평소에는 보여주지 못했던 화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분명 나는 적당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감정 폭발에 놀라기도 했고 상대방 역시도 당황했었다.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항상 숨기고만 살아와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최근 정신의학과는 초만원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단지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끊기고 마스크를 쓰며 혼자 있는 시간이 조금 늘어난 것뿐인데 이렇게 우리는 우왕좌왕한다. 감정에 솔직해지자고 말한 지는 꽤나 되었지만 사실은 제대로 솔직해지진 않은 것 같다.

 

사실 이러한 감정은 불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놀라거나 하는 것은 그 당시에만 반짝 반응을 하고 마는 경우가 많지만 두고두고 쌓아 올린 화는 바로 불안에 대한 대가라고 보여진다. 그 옛날 난중일기를 쓴 이순신은 막중한 임무와 전쟁 속에서 분명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불안해서 버티기가 힘든 와중에 쓴 그 일기는 엄청난 양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전쟁 속에서 힘든 상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글쓰기는 분명 감정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불안함을 글로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세상이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모든 것이 오프라인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시점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코로나 이후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너무나 많이 변했다. 대학 교육은 당연히 오프라인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온라인으로 하고 있고 의외로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물론 효과는 상당히 떨어지긴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토론도 가능하고 발표도 되는 것을 보면 이제는 사이버 대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대학도 항상 이렇게 온라인 수업을 필요로 해야 할 날이 온 듯하다(오히려 기존의 사이버 대학들은 콘텐츠를 더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MZ세대부터 더 강력해진 '개성'이라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이 나와 같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남과 같다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로 남는 사회가 되었다. 색다른 것이 완판 되고 그것이 유행으로 바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걸그룹이 역주행을 하면서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뭔가 과거와는 다른 '종잡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옆에 누군가 없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펜데믹이 끝날까? 끝나고 나면 어떤 생활이 이어지게 될까?

문득 오늘 회사 회의실에서 동료들과 라면을 먹다가 작년에 오신 그룹장님을 뵈었는데 인사를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이거였다.

"여기 있는 분들의 얼굴을 처음 봤네요."

업무 중에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으니 제대로 된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의미인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사실 그 사람의 감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가릴 수도 있어서 좋을 수 있지만 반대로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감이 되기 어려운 문제도 생긴다. 이렇게 이 펜데믹이 가져온 것은 극명한 마스크 뒤의 모습이 '사실은 내 진짜 모습' 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어쩌면 이제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더 어색해질 만큼 안의 모습이 좀 더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행복은 결국 내 안에 있다.

복권에 당첨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누구나 할 것이다. 일주일의 행복이라고하여 복권을 사고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여러 가지 행복한 고민을 해 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런 것 외에 아예 모든 생활에 대해서 사전에 준비를 하는 여성이 소개된다. 조금은 웃기기도 하지만 그녀처럼 준비를 하게 된다면 혹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정말 못할 것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녀는 비록 거의 95% 이상의 확률로 실행되지 않을 것들에 대해서 준비를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즐거움을 느낄까?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본다. 

문득, 스마트폰을 열어서 전화번호부를 본다. 이 많은 사람들 중 과연 내가 갑자기 전화해서 나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채 3명이 넘지 않는다고 생각이 된다. 오히려 친할수록 연락이 더 적지만 그럼에도 연락을 하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되는 그런 감정들. 우리는 그런 감정을 사랑하고 또 원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온 또 하나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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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1. 3. 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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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40대가 다가온다.

나의 30대를 평가하자면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는 살았는데 뭔가 성과는 없었다고 할까? 당시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들고 바뻤었는데 이제 좀 한숨 돌릴 때가 되니까 40대가 다가온다. 지금 와서 아쉬운 것은 20대 때 좀 더 30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았으면 어떨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 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나 아쉽긴 하다. 저자는 이제 30대 초반에 들어온 아리따운 나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책의 앞 쪽을 보면 뭔가 한 50년은 산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왜 고작 30대 초입에 온 사람이 규칙을 논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은 저자의 과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기 시작한 것 같다.

 

당신은 트라우마가 있는가?

나는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저자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있다. 고등학교 때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을 선택한 것인데, 표현은 이제 장녀로서 집에서 맡은 무거운 짐도 엄마로서의 큰 짐도 훌훌 털어버렸다는 표현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런 표현에 마음이 뭉클해졌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다가 내용을 이해하고는 정말 큰 아픔이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아픔은 있지만 성격상 그래도 극복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는데 저자는 많은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런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별명도 생기고(얼음공주?ㅋ) 어머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남자 친구에게서 받기 위해서 집착을 계속하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이런 집착은 다른 이유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구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어느 날.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고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갈구를 하던 와중에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나 보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과 함께 결국 과거의 나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이렇게 힘든 사랑을 하고 있었나 보다. 자신과 직접 마주하기 위해서 마음가짐을 바꾸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결국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지금까지 했었던 집착은 이제 버리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트라우마도 있겠지만 결국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이 남보다 더 뛰어나진 못하더라도 뒤쳐지는 것을 보는 것을 너무나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비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일단 나 자신을 남에게 어떤 사람이다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은 나 자신대로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니까.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하는데 희안한 것은 실제로 옆집이나 아랫집 등과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아파트에 많이 살고 있으니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뭔가 희한하지 않은가? 이런 것 역시 다른 사람과 나를 무의식 중에 비교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교하지 않으면 증명할 필요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그리고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가진 부족한 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어쩌면 지금 30대에게는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굳이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20대 때 사회에 나오기 전에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결혼도 취업도 사랑도, 그런데 이런 것 조차 '누군가와 비교'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아닐까?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주변을 계속 비교하지 말고 원하는 것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30대의 삶은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흔들리는 것에 맞춰서 나도 흔들 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가? 나는 나인데 굳이 그럴 것 없다. 좀 더 자유롭게 지내도 좋다. 틀 안에 갇혀서 힘들어하지 말고 노력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마지막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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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0. 9. 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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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도 이제 40을 향해 다가가고 있고 나의 배우자 역시 동일하다.

사실 지금은 재미를 느낀다기보다는 뭔가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수준인데, 이렇게 바쁜 시간이 지나가면 과연 재미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뭔가 재미보다는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뭔 재미로 사는 것이 속 편한 이야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큰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며 특히 부부 사이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폭풍우가 왔을 때 그 폭풍우와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피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집에 틀어박혀서 신경조차 쓰지 않을까? 어쩌면 저자는 3번째를 선택하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는 방식으로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의 서두부터 자신의 상황이 나온다. 

그녀의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물론 왜 바람을 피웠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분명 신의성실의 법칙을 어긴 것은 남편 쪽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그런 상황에서 굉장히 급격하게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결혼 전에 자신감 넘치고 스스로를 굉장히 사랑하는 그런 모습에서 순종적이어야 하고 자포자기를 하는 상황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결혼을 하면 여자가 항상 불리한 상황이 나오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페미니즘이라고 하여 여성의 우월성을 기르고자 하는 것은 '정상인 상태로 가기 위한 방법' 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너무 당연한 것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혼을 결심했다가 이혼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그녀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사실 부부 사이에서 바람을 핀 것 만큼 큰 배신은 없다. 결혼이라는 시스템이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한 명의 사람이 한 명의 배우자와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도 하면서 지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이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는 사회가 되었기에 당연히 그녀가 행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녀가 이혼이라는 것을 결국 하지 못한 것은 용서를 했다기보다는 다른 더 값진 것을 얻기 위해 그냥 '보존' 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사실 남편이 이 책에서 보면 돈을 많이 번다고 되어 있긴 하다. 적어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같이 살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들어있는 듯하다)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쓰고 노력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자신만의 방법을 활용하곤 한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방식들은 자신만의 해결 방식이다. 모든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죽음으로 가게 된다.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물론 그녀도 처음에는 여느 '아줌마들'처럼 티브이를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면서 보냈다. 그런데 사건 이후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변화가 필요했다. 물론 과거에 해왔던 것들의 연장선 상이지만 좀 더 깊이 있게 좀 더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 책 역시 그 결과를 나타낸 것으로 파악되며 공들인 시간만큼이나 책은 묘하게 재미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책의 내용은 다소 푼수끼가 보인다고 할까?

 

세상에는 절대, 영원히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도 이루어지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결혼을 할 때 과연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것까지 계산해 가면서 살 수 없다.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고달프고 재미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지나간 과거는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돌려놓을 수 없으니 앞으로의 인생에서 뭐하고 '놀지'를 생각해 보자는 의미인데, 어쩌면 그녀에게 딱 알맞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나도 40대에는 책을 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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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0. 5. 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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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무진장 길어보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는 책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데 경쟁을 강요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를 한다. 대충 산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나는 사람조차 많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트렌드가 '나 자신' 을 위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가끔은 편안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하고 나서도 오히려 병원비로 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을 본다면 분명 이제는 조금 쉬었다가는 사회가 되도 될 듯 하다. 이렇게 경재 성장이 빠른 나라도 없었는데 그만큼 곯은 곳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최근 연예인들도 하는(?) 그런 트렌드를 작가는 따라갔다. 유능한 회사원에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서점을 연 그런 케이스 말이다.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이제는 정말 '나도 서점을 열어야 이렇게 동참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서점을 여는 거 자체도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어쩌면 '좋아하는 일' 을 하고 살 수 있다는 열망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괴리가 많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고 사실 정작 일을 구할 때까지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 지도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위해 교육을 받은 것일까?

 

저자는 퇴사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퇴사했을 것이다.

보통은 돈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누가 요즘 책방을 찾아가겠니, 후회하고 있지 않겠니... 물론 당시 상황에서 그렇게 한 것은 그러한 큰 목표가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자꾸 이렇게 하면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왠지 그 상황에서의 작가의 모습이 자꾸 그려진다. 물론 나중에 보니까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상태이긴 해서 어느정도 가정이 있기에 도박(?)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민 속 이후의 모습에서 저자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이렇게 스스로 책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부러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경쟁과 '빠르게' 를 강요받았다.

인생이 모두 달리기 처럼 앞만 보고 뛰면 된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 달리기 도중에 멈추면 끝이 날 것 같아서 멈추지 못하고 뛰다가 더이상 뛰지 못해 멈춰서 보면 생각보다 주변은 아름다운 것도 새로운 것도 많은 세상이 펼쳐진다. 이제부터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과연 이 상황에서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 볼 지 아니면 다시 뛸 지... 하지만 뛰지 않으면 패배자라는 인식이 계속 교육되어 있어서 대부분은 다시 뛴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거리를 채우는 것은 불가능 하고 그저 유지하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 마냥 뛰는 사람만 있어서야 될까라는 생각도 하기도 하고 앞이 아닌 옆으로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의 생각을 앞이 아닌 옆으로 많이 바꿔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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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9. 9. 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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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 언급했던 교대근무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맞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눈에 보일정도로 황홀(?)했지만 새벽까지 계속 근무를 하고 거기다가 24시간 시시때떄로 연락이 오는 것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와이프도 굉장히 불만이 많았었다. 근무도 짜증나는데 왜 자꾸 새벽에도 전화를 하는 것이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도 그 새벽에 가끔은 전화를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더라.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내가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어서 화를 낸 적도 많이 있던 것 같다. 당장 나에게 전화해서 뭘 해달라고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었을 때는 정말 매몰차게 소리지르고 전화를 끊었던 적도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들도 정말 답이 없어서 전화를 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찌됐건 분명 입사할 때는 3~4년 정도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교대근무의 모습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동일한 라인에서 계속 있다보니 사람은 적체되어 있는데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상태로 계속 유지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3~4년이 아니라 5년이 지나도 계속 교대근무를 돌아야 하는데 이대로는 절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사라던지 홍보팀 등에서 하는 각종 참여를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글쓰는 것과 독서를 주무기로 진행을 해 보았으나 다른 부서로 가기에는 능력도 부족했고 현 부서에서 썩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단순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사팀 사람들과 조금 더 안면이 트인정도? 그리고 강남 서초사옥을 가끔 가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평생 가보지 못할 것 같았는데 가 봤으니 이 또한 만족스럽지 않은가?

 

아무튼 생각했던 3년이 지나가고 4년차가 되었을 때 위의 발버둥도 어느정도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그 때에! 바로 기회가 생겼다. 분명 OFFICE에서만 가능한 업무지만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설비 Set-up 업무에 공석이 생긴 것이다. 사실 기존에 다른 인원이 하고 있다가 퇴사 진행으로 인해 공석이 생긴 부분이었는데 지원자도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 뭐랄까 군대문화의 특징이 항상 서열 순서대로 눈치를 보고 내 차례가 오면 자연스럽게 한다는 그런 문화가 있었는데 난 그런거 필요없었다.(아 물론 얼추 내 차례가 오긴 왔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지원했고 자연스럽게 업무를 받아서 교대 근무에서 탈출하는 기회가 왔다. 지금 입사를 하는 친구들은 신규라인에 가면 거의 반드시 Set-up 업무를 하게 될텐데 바꿔 말하자면 해당 업무는 향후에도 언제든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미리 배워두면 좋을수도 있고 신규 라인보다는 그래도 기존 라인에서 배우는 것이 차근차근 배우기는 더 좋다. 실제로 신규 라인에서 배우면 소위 '뻘짓' 만 신나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업무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니(기본적으로 이걸 내가 왜 하는가? 는 알아야 하더라도 억울하지라도 않지...) 내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으로 온다면 신규 라인 보다는 기존 라인으로 가서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어찌됐건 3.5년 정도를 교대근무를 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교대 근무는 거의 하지 않았다. 주말에 가끔씩 Day 근무나 Swing 근무만 도와주었고 이후로는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는데 초기 1년 정도는 단순히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감동에 그저 좋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아니었었다. 부서에는 교대근무에서 OFFICE 근무로 내려갔다가 다시 거꾸로 교대근무로 전환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교대 근무의 경우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해당 근무 시간에 발생된 것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더라도 다음 근무자에게 상황 설명 후 연계를 하면 이어서 업무가 진행된다. 다르게 보자면 내 업무나 아닌 '우리 업무' 라는 의미이다. 이것의 장점은 '우리' 가 다같이 잘하면 빠르게 업무를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내 업무' 가 아니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것도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기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어쩌면 교대 근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본다.

 

업무 자체를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말이 길어지긴 하겠지만 일단 위에 적었던 현재의 신입사원 보다는 훨씬 빠르게 OFFICE 근무로 내려왔다(올라갔다고 해야 하나?) 사실 다른 회사였다면 누구나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겠지만 (심지어 제조센터가 아닌 다른 곳이었더라도) 그런 생활을 몇 년만에 해보니 그저 즐겁고 편하기만 했다. 그런 삶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서서히 업무 난이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유관부서와 부딪히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요 시점쯤 되면 퇴사율이 엄청나게 높은 설비 엔지니어 직군들도 대부분 퇴사를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버티기 시작하는 상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몸은 편해지기 시작했고 업무에 깊이가 조금은 생기기 시작했으며 다른 라인을 이동함에 있어서도 본인의 능력이 어느정도 발휘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좋은 면만을 보자면 그렇지만 다르게 보자면 업무 전환이 슬슬 어려워 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게 그 삶이 점차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 어디에선 가는 아직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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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1. 11. 1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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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제가 읽었던 책들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아래 방향을 잡아주는 책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러한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관심분야이기도 하기에 그렇겠지만 막상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 목숨을 걸면서 까지 노력을 하지만 이걸로 무엇을 할까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실까? 라는 것도 생각을 하지만 '그런 일은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내일 죽는 것이 확정된다면 무슨 일을 할 것 같습니까?

책의 저자는 상속 변호사 입니다. 어쩌면 이 책과 가장 어울리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주변에서 생의 마지막을 고민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 상 법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경우에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후훗, 전 한 번도 만나뵌 적이 없습니다. 뭐가 있어야 싸우지요..ㅋㅋ) 특히 소송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근무하시는 분이니 여러 가지 사례를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변호사의 입장에서만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보아야 하므로 본인 스스로도 '당장 내일 죽는다면 나도 저렇게 될까?' 라는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것이 정답이다라고 하는 것은 없겠지만 그것을 함축하여 이 책을 써 내려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많은 자산, 수 많은 친구들이 있더라도 무엇 하나가 부족하기 시작하면 쉽게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갈구하고 노력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반드시 중요하지 않다고 교육을 받긴 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살아가기란 더욱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특히 생을 마감하면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될 시기에는 누구나 지나온 날들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사람을 만났어야 했다는둥,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아야 했었다는 둥 말이지요.

한국에서 유언장의 의미는 재산 분할의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에게는 1/2를 둘째는 1/3 막내는 그 나머지' 라고 적어놓는 것이 유언장의 기본틀입니다. 왜 일까요? 한국인들이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요? 원인은 동양적인 사상에서는 살아생전에 돈과 관련된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다면 이상하게 바라보는 희안한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의 유언장에는 어찌보면 유머와 위트가 녹여들어가 있습니다. 희안한 조건이 걸려 있는가 하면 유산을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물려주기도 합니다. 아직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입니다만, 유산만을 바라보고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지 않는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무역센터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가족에게 전화를 해서 마지막 유언으로 '보고싶다,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나 보는 내용 같지만 그들은 그 위급하고 급박한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단순히 유산 문제가 아닌 나의 마음을 전달 합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것은 조금은 의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 자신이 죽음으로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재산을 어떤 식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매말라 보이기도 합니다^^;(후담이지만 그렇게 죽은 사람들과 같은 층에 있던 한국사람 중 뛰어내려와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한국인이 똑똑한 것이겠지요?^^;)

저자는 말합니다. 왕처럼 살다가 거지처럼 죽자고. 거지처럼 모아서 마지막에서야 왕처럼 죽기보다는 평소에 왕처럼 생활을 하다가 모든 것을 나눠주고 거지가 되어 돌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누울 만큼의 땅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현재에 많은 것을 가져간 사람이라도 결국 똑같은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 사람이 지나간 후에 어떤 향기가 날 것인가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 후세 사람들이 더 기억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내일 죽어도 좋은 사람은 없지만 늘 대비를 한다면 좀 더 마음 편히 세상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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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