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플랫폼' 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모바일이 손으로 들어오고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면서 바로 그 모바일 안에서 편리하게 하나로 묶는 플랫폼들의 힘이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글과 애플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세계 최고의 주가를 선보이고 있고 한국에서는 네카라쿠배로 이어지는 각종 플랫폼들이 한국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소비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회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좋은 회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플랫폼으로 인해서 수수료는 점점 증대가 되고 과거에는 굳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지불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것일까?
우리는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정상적으로 지불하고 있던 것일까?
서비스라는 이름 하에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배달도 분명 서비스 개념이었을 것이고 과거 물도 분명 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무료로 제공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와서 그것을 모두 돈을 받고 한다는 것에 굉장히 불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 상대방에게 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돈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카카오 택시도 어쩌면 이러한 서비스가 없었을 때는 콜택시나 손으로 휘휘 저어서 하는 방식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었다면 이제는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물론 있지만 대부분 그냥 사전에 예약을 건다) 과거 제대로 된 서비스 비용을 지불을 했다면 이렇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데 폐해도 분명 많아진다.
배민이나 요기요, 쿠팡 이츠 등으로 통일화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발생되는 문제는 바로 수수료다. 기존의 업자들은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매출을 늘릴 수 없으니 울며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소비자는 알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는 왜 배달비를 따로 받는가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 편해졌는데 양쪽 다 불만을 갖게 된다. 마음속에서 서비스라는 것은 항상 무료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해서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건 잘못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플랫폼 업체가 소수로 줄어들면서 수수료를 자꾸 상향을 하게 되니 그것에 대한 폐해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될 이러한 승자 독식을 방지하자는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법제화가 답일까?
이 책의 내용 대다수는 법제화를 통해서 플랫폼 업체를 '강제' 할 수 있는 것을 많이 나타낸다. 사회학자들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법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본다. 제 2의 타다가 발생될 소지가 있고 건전한 경쟁을 항상 법으로 기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아마 이 책의 의견과는 조금은 반대되는 의견이라고 생각이 된다) 분명 이 책에 많은 우수한 교수님들이 여러 문제점들을 짚어 주셨고 그에 따른 해결 방안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더 뛰어나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문제를 꼭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다른 대안을 낼 수 있다면 좀 더 효율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비판적 시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거 '시크릿'이라는 책이 유행을 했을 때, 우리는 꿈과 희망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시절이 좋았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하면 된다'라는 의지가 굉장히 팽배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이후로 실제로 그 책으로 인해 성공했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나지는 않으면서 정말 '소수의 사람'만 가능한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했다. 보통 자기 개발서 등이 뭔가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듯 되뇌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저 '꿈'만 꾸는 것으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도 다르진 않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생각을 하고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이루어 나가라는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저 꿈만 꾸는 것은 새벽에 잠을 자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자신이 그저 바라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이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로또에 당첨이 되기 위해서는 로또를 사야하고 언제 당첨자를 뽑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로또 번호가 1등이라고 해도 모르거나 사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옮기는 '행동력' 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는 모든 행운의 시발점이며 상상력의 산물이다.
해당 문구가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현재 세계 최고의 회사들로 군림하는 애플이나 구글, 메타, 테슬라의 시작이 결코 고차원 적이고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행운이 정말 알맞은 시기에 왔으며 더군다나 그들의 기업들은 코로나로 인해서 오히려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디어를 보고 '나도 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말을 한다. 정말 할 수 있었을까?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도 힘들지만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활용할 줄 아는 방법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아이디어는 모든 행운의 시발점이고 그 행운을 거머쥔 사람은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부동산 거래를 즐겨하면서...
제일 부족하다고 느낀 점이 바로 '인내심'이다. 내 것이 팔린다는 의미는 시장에서 뭔가 수요가 있었다는 의미인데 그저 팔렸다는 것에 대해서만 기분이 좋아서 더 큰 행운을 걷어찬 적이 많이 있다. 미래를 어느정도 예측을 했으면서 실제적으로는 그저 거래에 '중독' 된 것과 같은 행동을 했었다.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끈기와 인내는 부를 축적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보통 한국에서 '존버'라는 단어로 그것을 표현하곤 하는데 그저 기다린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와 성공에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그런데 생각보다 부를 이룬 사람은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일반적인 자기개발서에 나와 있는 행동을 결국 지키지 못해서이다. 그대로만 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그 사이에서 꼼수를 생각하게 된다(뭔가 쓰면서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코치의 질문'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을 천천히 읽어보면서 고민을 해 본다면 좀 더 부에 가깝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난 단연코 뇌라고 생각이 된다. 그 작은 곳에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고 창조해 낼 수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균일하지도 않고 너무나 다양하다. 세상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뇌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간단하게만 살면 되는 시대에서 이제는 너무나 복잡하게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에 적응을 잘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서히 그 폭이 줄어들고 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이 된다. 최근 키오스크 같은 것을 보면 중장년 층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물건으로 비출 정도인데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
물론 Do it! 이 가장 명쾌한 답변이겠지만...
엔트로피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항상 루틴하게 하던 것만 하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엔트로피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책에서는 제스처를 보조 수단이 아니라 메인 수단과 마찬가지로 활용을 하면 그 성능이 배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다소 주춤했지만 굉장히 유명한 역사 홍보 가인 설민석의 화법을 보면 말도 굉장히 유창하게 잘 하지만 무엇보다 손짓 발짓 등의 제스처가 정말 너무나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무엇이든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보다 제스처가 함유되어 있다면 더 확장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가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실 이 영화는 메타버스나 미래학 책에 절대 빠지지 않고 나오는 교과서와 같은 영화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공상과학에 굉장한 능력이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2000년도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를 토대로 지금까지 그대로 기술을 개발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미 그 때 상상력을 토대로 지금까지의 기술에 대한 것을 생각했고 단순히 허황된 내용이 아닌 '실제로' 실현이 가능한 기술로 마련이 되고 있다. 그 기술을 따라가야 하는 것도 맞겠지만 우리는 제2의 스필버그가 되어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을까?
고정관념은 정말 무서운 적?
여성이 STEM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동안 여자가 얽매여 있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동일한 상황에서 경쟁을 했던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경쟁을 했기 때문이라는 측면을 보자면 오히려 최근의 성과는 더 무섭게 상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과연 미래는 어떨까? 우리는 고정관념이라는 큰 적을 빼고 다른 사람을 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특히 '익스텐드 마인드' 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고정관념은 정말 무서운 적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다.
IQ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생각을 할 때는 누가 더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외우고 있는가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런 것은 이미 각종 모바일 기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좀 더 집중력있고 생산성 있는 그리고 창의적인 일에 손을 대야 하고 단순 암기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학교 수업은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야 들어야 하지만 아직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니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 사황이다. 그래서 이러한 책들이 바로 그런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거의 뭐 바닥 중에 바닥을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재능도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은 미술을 대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작품들이 나왔던 것 같은데 나에게 있어서 미술은 그냥 교과목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과목일 뿐이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선생님도 나에게 미술이 재미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지금 내 아들은 미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근데 미술이 재미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열광을 한다.
미술을 잘하면 어떤 것이 좋을까?
우리 첫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가끔 미술학원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한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4시간은 거뜬히 앉아서 진행을 하곤 한다. 신기하다. 공부를 시키면 10분도 안돼서 튀어나오는데 미술은 절대 그런 것이 없다. 특히 어떤 주제를 던져주면 별 고민 없이 바로 그림으로 표현을 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는데 그 주제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 펼칠 수 있는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적어도 상상력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준인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우리 아이와 같이 미술을 배우는 친구가 있다.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인데 지금은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미술학원만 같이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벌써부터 직업이 있는 상황이고(배우) 그 업에서 오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스트레스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너무 어려서 술을 마시고 풀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와 같이 하는 미술을 항상 기다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분명 자신이 억눌렸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다.
학교의 정규과정을 진행하게 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어릴 적이 있던 창의력이 다 죽어나가고 획일화된 교육만 남는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미술 전문 선생님이지 정규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선생님이 아니니 오히려 더 폭넓은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된다.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특히 미술과 같은 과목은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언제쯤 공교육에서 이것이 가능한 날이 올까?
예체능이 창조성을 키우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을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하지 못한 사람도 분명 존재하고 특히 사람의 재능에 따라서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책은 여기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엄마표 미술을 해 보라고 권유하지만 내가 한 개 해 보니까 정말 쉬운게 아니다. 아이의 상상력을 끌어내기 위해 나 역시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예전부터도 관심이 없던 분야이다 보니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돈을 더 투자하지만^^;;;; 다른 엄마들은 좀 더 아이를 위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창의력 만세!
코로나 이후 특히 회사에서는 관계라는 것이 정의하기가 좀 애매해졌다. 평소에는 조금 어색하더라도 술자리를 통해서 친해지거나 아니면 억지로라도 친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는데 지금은 그런 자리 자체가 없어지고 마스크 벗은 모습 보는 것도 거의 드문 일이라서 상대방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도 사라지고 있고 거기다가 '굳이 왜 저 사람을 알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무심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 나 역시도 작년에 부서를 복귀해서 느낀 처음 느낌은 서로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말도 걸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내 친화력에 문제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한국식 관계는 사실 지나치게 밀접하긴 하다.
해외에서는 만원버스에서도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방이 뒤로 물러난다고 한다. 나라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어서 사회적 거리와 개인적 거리가 다르게 존재한다고 하는데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보면 만원 버스에서는 거의 뭐 몸을 비비다 시 피할 정도이니(그래서 치한도 나타나는데 뭐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손을 위로 들고 타는 매너손(?) 같은 행동도 할 정도이니 한국식 관계는 참 애매하긴 하다) 거기다가 예전에는 상대방의 수저 개수까지도 알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친근(?)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거의 스토커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관계의 시작은 대화이다.
가끔 보면 모든 대화를 공격적이거나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흔히 직장 상사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후배들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조차도 말을 할 때마다 불편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손절을 하자고 하니 뭔가 나의 삶에 일부분인 것 같아서 손쉽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일단 그게 '나'는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에는 대화에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그래, 사실 이게 맞다. 나는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다. 현대 사회인들의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리더의 입장이 되면 조금 다른 상황이 된다.
아무도 상처를 받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모두 나랑 똑같은 사람만 존재를 해야 한다(그래야 내 마음과 같을테니) 그런데 그런 상황은 분명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성과와 회사의 목표를 위해서는 조직의 인원들에게 가끔은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단어로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부서장들도 가끔 거꾸로 후배들에게 면담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면담을 할 때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업무를 잘해서 올라간 거지 사실 조직관리를 잘해서 올라간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부서장들이 조직 관리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일단 대화를 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나이대가 학습이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내가 부서장이 된다면 난 그러지 말아야지.
마지막 부분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도 나와있다.
가족은 무조건 사랑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가? 사실 그조차도 절대 명제는 아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친구보다 못한 경우도 분명 있는데 서로가 모종의 이유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사실 이것은 모든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해결할 방법은 모르겠지만 가족도 사실 '조금 가까운 남' 정도로 생각을 하는 편이 좋을수도 있다. 매일 얼굴을 본다고 해서 꼭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장 사랑하던 동거녀와도 어느 날 갑자기 갈라서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어쩌면 지금 사회는 꼭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관계라는 것에 재정의도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조금은 거리를 둬야 편안한 그런 사회가 되어가는 거 같아서 아쉽기도 하지만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명언이지만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케이스가 없다고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평소에 말을 하더라도 편안하고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불편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동일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설명을 할 수 있는가가 의문이기는 하다. 책의 제목과 같이 '말이 마음 같지 않아'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라는 것에 대해서 본능으로 배운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내 상황은 되도록 객관적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도나 나의 생각을 알려주고 싶다면 최대한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뭔가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거나 고민을 상담하고 싶을 때 너무 자신의 주관만을 설명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도 이해를 하지만 나중에는 그저 답답한 이야기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 중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말을 하더라도 한 번 걸러서 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고 힘들다. 위와 마찬가지로 불편하면 점점 멀어지게 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세상에서 한 번 멀어지면 쉽게 다시 친해지기 어렵지 않은가?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객관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느낌도 솔직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마음이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항상 방어기제가 발동이 되어 최대한 나의 느낌을 전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마치 '네가 나의 마음을 알아서 알아내 봐'라는 느낌인데 이 역시도 한두 번이지 본인 느낌만 쏙 빼놓고 이야기를 하면 과연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책에서는 주로 부부관계에 있어서 그런 모습이 담겨 있는데 정말 마음에 와닿는 것이 많다. 사실 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이 책에 나와 있는 예시를 보고 자신의 말투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어렸을 때 무엇인가를 원하면 달라고 요구를 하는 것과 더불어 울기도 하고 뺏고 싸우기도 한다. 단순히 어렸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막상 무엇인가를 가져왔을 때 그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어릴 때도 그랬는데 막상 커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이 있다. 실제로 필요해서 쌓아놓았는데 쓰지 않는 경우가 어릴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진짜 실제로 필요한 것인가?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을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청소를 부탁하고자 할 때 단순히 '청소를 해라' 라고 하면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거나 기분이 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비단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런 대화 시에 먼저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중과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된다면, 여건이 허락된다면~'과 같은 말이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현재 감정이나 상황을 정확히 이야기를 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이렇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이고 확률 높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아진 이 세상에서 한 번 공부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갑자기 화가 난다던가 너무나 서운하다던가 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왕왕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가끔 어떤 날이 되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의 와이프에게 '자꾸 감정적으로 그러지 마'라고 말을 하면서 그것을 그대로 하고 있던 나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일까? 아니면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고 하는데 가끔 그 가면에 벗겨지는 시점에 돼서 그런 것일까?
It will be fine.
사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는 참 힘든 세상이다. 생각보다 왜 이렇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고 우려했던 것만 발생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또 지나고 나서 보면 항상 '최악은 피했네' 라는 생각도 해 본다. 내 뜻대로 인생이 아름답게 흐른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인생은 재미가 없지 않을까?(물론 재미가 항상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어쩌면 지나가고 나면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흘러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을 항상 먼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조그마한 행복을 바라보고 살짝 뛰어보는 것. 모든 것은 잘 될 거다. 아니 잘 되어야 한다. 내 인생은 그래야 하니까.
SNS는 사실 필요악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악으로 보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고 싶고 내 감정이나 상황을 공유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 묘한 감정이다. 그런데 최근 이것 때문에 당장 내 주위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당장 와이프의 생각만 들어도 SNS 안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돈이 어디서 나서 그런 명품이나 슈퍼카들을 타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다른 사람과 나의 상황을 비교하기 쉬운 세상이다. 어렵고 쉽지 않지만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제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비교가 사람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의 최고 허세에 가까운 모습을 어찌 나의 평범한 모습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굳이 미움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힘을 써야 하는가?
사람은 타고난 다정함이 있다고 한다. 그 다정함을 잘 활용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난 다정함 따위는 없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하다 못해 굳이 미워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는 그 미워하는 사람을 일부러 기억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하며 화를 내기 위한 칼로리 소비(건강에 도움이 되려나??)를 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왜 그런 허무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 뭐 한두 번 정도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계속 여러 번을 반복하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워할 사람은 차라리 무시하자. 딱 그 정도가 좋다.
책 내용 중 가장 인상깊은 내용이 있었다.
'내 여름은 100번도 채 남지 않았으니 여름을 즐겨야겠다'
아, 왠지 멋지다. 생각해보니 가을도 겨울도 봄도 100번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데 뭘 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감정적이 되어야 할까? 가끔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도 어쩌면 나의 솔직한 감정이다.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지 말고 조금은 더 솔직하고 편안하게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은 기승전결 속에 임팩트 있는 적이 나오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아무런 주제 없이 흘러가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 않던가? 우리들은 인생은 웃고 슬프고 행복하고 눈물이 난다. 그렇게 한 편의 영화가 마무리될 때 후회 없도록 지금 당장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보자.
흔히 생각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의심이 많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특히 회사에서 보면 상사들이 계속 의심을 하고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부하직원들은 아주 진절머리 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사실 대부분 발생하지 않을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고 그 경우의 수를 해결하려고 하니 정말 너무나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익숙해지게 되면 이러한 의심들을 거두어 버리게 된다. 그로 인해서 큰 문제가 발생을 하게 되면 그때서야 생각을 다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곤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에 대해서 한 번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맞는가? 합리적인 의심은 조금도 들지 않던가?
<1장 - 우리 마음속의 전도사, 검사, 정치인, 과학자>
지금 내가 열거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아는가?
어떤 근거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전도사는 성경 말씀을, 검사는 증거를 가지고 정치인은 그것이 진짜든 아니든 교묘한 말솜씨로, 과학자는 데이터를 가지고 말이다. 다만 전도사나 정치인의 경우 나쁜 것이나 잘못된 것을 적어보자면 너무나 많아서 적기는 어려우니 기업 쪽으로 가보자면 예시를 든 것이 바로 RIM의 '블랙베리'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직전 세계 최고의 혁신적인 제품으로 거듭나고 있었을 시기였고 북미 대륙에서는 패왕으로 등극하고 있던 시기에 갑툭튀(?) 아이폰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아이폰의 UI에 쏠려 있는데 RIM의 사장은 마지막까지 자판을 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일반 스마트폰과 같은 제품도 나오긴 했는데 그냥 시장 속에 쓸려가 버렸다. 자판을 치는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면 복고를 꿈꿔야 하겠지만 과연 당시에 왜 생각을 다시 해 보지 못했을까? 결론적으로 혁신은 끊임없는 자기 확신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2장 - 안락의자 쿼터백과 가면을 쓴 사기꾼>
주제가 뭔가 좀 난잡한데, 결론적으로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시로 한 재봉틀 일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본인이 시력을 잃게 되었음에도 시각적으로 많은 것을 표현을 한다. 그로 인해서 의사가 시각에 문제가 있어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는 사실을 굉장히 늦게 인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은 시각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 환자가 있을 때 과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에 능하게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하게 될 때 본능적으로 반복적인 거짓말이 되면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다(나 역시 그렇다) 그것이 외적으로도 드러나면 범죄가 될 수도 있지만 내적에서 멈춘다고 하면 가끔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잘 생겼는가?
<3장 - 틀렸을 때 느끼는 기쁨>
이번 화에서는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고 하는 장-피에르라는 사람이 나온다.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잘한다고 하지만 2015년 미 대선에 트럼프가 나오게 되고 나중에는 트럼프가 당선이 될 확률이 객관적인 상황에서도 높다고 판단이 되지만 머릿속으로는 트럼프는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그것이 정치적 색깔이던 다른 이유에서건 말이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는 트럼프가 진다는 결론을 내려버리는데 결과적으로는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으니 외적으로는 실패했다. 하지만 본인은 알고 있다 본인이 말했던 것을 틀렸음에도 자신은 맞춘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기쁨이라고 했던가?
<4장 - 어느 멋진 파이트 클럽>
라이트 형제의 성공 비결은?
세계 최초로 유인 항공기를 만들어 낸 라이트 형제는 사실 형제가 서로 극단적으로 토론을 하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어쩌면 형제였고 둘 다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러한 싸움 속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도출되고 성과로 남게 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어떤 사이든 간에 항상 상명하복의 형태로 바뀌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인데 이렇게 개인적인 갈등에서는 문제가 많이 될 수 있지만 업무적인 갈등(디즈니와 픽사의 차별점)에 대한 대처가 그 기업의 성패를 달리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5장 - 적과 함께 춤을>
이번 장에서는 하리 시라는 사람의 토론 방법에 대해서 나온다.
많은 데이터와 상황이 토론의 반대편에 유리하게 설정이 되어 있다. 그런 경우 같이 데이터로 싸움을 하게 되면 백전백패이다. 그리고 서로의 창과 방패로 찌르고 막고를 반복하게 되면 서로의 상처만 남고 그냥 끝이 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장의 제목과 같이 하리시는 적과 나와의 공통점을 먼저 파악한 다음 상대방에 가장 강력하고 자신 있게 생각하는 소위 '강철 인간'을 붙잡고 시작한다. 단, 절대 공격적이지 않고 상대방의 의도를 다 듣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합치는 그런 방법 말이다. 서로 보는 방향이 정 반대가 아니라 같이 보고 있음에도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는 것을 자연스레 내 쪽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오, 대단한데?
<6장 - 다이아몬드에 묻은 나쁜 피>
인종 차별, 그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우리 아시아계 사람들이 누구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망할 중국...) 굉장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는 미국에서 총구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어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하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이 인종차별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는 인종차별과 더불어 뿌리 깊은 지역 갈등에 대해서도 나와 있는데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즈 팬들 간의 전쟁은 인종차별을 능가할 정도이다. 다만 그러한 상황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책에서 조차도 결론을 낼 수 없는 그런 부분인 듯하다.
<7장 - 백신을 속삭이는 사람과 부드러운 태도의 심문자>
말의 무서움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이다.
장의 주제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난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너무나 부드럽게 나의 개인정보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구매를 속삭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내가 '난 정신 차리고 있으니까 절대 이런 것에 걸려들지 않아'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난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설득하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방어기제가 펼쳐지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반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질문은 결국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경청하며 개인적인 판단을 앞세우지 않는 것(사실 정말 힘든 그것들)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여러 실험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으니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고 있다.
<8장 - 격양된 대화>
우리는 가끔 격렬한 토론을 한다. 낙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이건 사실 찬반이 너무나 확실한 내용이라 서로 간에 합의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 낙태를 적당히 하자? 이러한 답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람에게는 앞으로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인가? 낙태라는 주제만 놓고 보자면 그렇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보자. 왜 낙태를 하는가? 기형아 문제도 분명 있을 테도 자유로운 성생활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내용의 주제를 바꾸면 토론이 훨씬 원활해진다. 바로 이렇게 주제를 더 위로, 아니면 더 아래로 변형할 수 있다면 효율적인 토론이 되지 않을까?
<9장 - 교과서 다시 쓰기>
지구는 평평하다?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교과서(아마 교과서라는 것은 없었겠지만 누군가의 책에는)는 당연히 평평한 것이 진리라고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평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시는 얼마나 심했을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앞으로는 다른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현대사의 많은 내용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맞다 틀 리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 맞다.
<10장 - 그것은 우리가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다>
NASA에서 우주선을 발사할 때는 사실 일반적인 생활과는 다르게 '절대 실수가 없어야' 가장 안전하게 성공할 수 있다. 매 번 실패를 할 때마다 너무나 단순한 문제, 혹은 절대 생기지 않았어야 할 실수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2006년에 모든 사람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여 발사가 연기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이 아니라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던 사람이 반대를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시 '학습'을 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된다면 후회할 점이 많이 줄어든다. 우리 회사는 과연 지금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가?
<11장 - 터널시야 탈출하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 그렇죠? 돈을 많이 버니까요. 돈을 많이 벌면 뭐할 거지요? 번듯한 집에 들어가서 즐겁고 신나게 인생을 살아갈 겁니다. 근데 신나게 인생을 사는 것은 왜 나중에 해야 하지요? 지금 하면 안 되나요?........?
위의 내용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가 만든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그 터널 너머에 어떤 결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터널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 터널 밖으로 돌아 나와도 된다는 사실은 머릿속에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산다. 어쩌면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터널시야'를 탈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내가 만들어낸 터널 문제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터널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지금이라도 잠깐 멈춰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좀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껍기도 하지만 생각을 다시 하지 않으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하지만 읽고 보니 생각이 조금은 넓어졌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도 한 3번쯤 읽어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가가 쪼금은 미워지기도 한다. 나 바쁜데!
우리 와이프가 가끔 샤넬로 노래를 부를 때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무거나 들면 되지 그런 게 뭐가 필요하냐고. 그런데 항상 답변은 동일하다.
'샤넬은 다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다른걸까? 뭐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똑같은데 다르다고 한다. 심지어 냄새도 환상적이라고 한다(변태인가...) 그런데 나 스스로의 과거 생각을 해 보자면 입사를 할 때도 대기업 위주로 본다. 왜 그럴까?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대기업의 '브랜딩'에 매혹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찾게 하는 그 힘이 바로 브랜딩, 즉 개별 브랜드이다. 마치 부동산으로 보자면 래미안이나 자이가 위치가 좋지 않아도 주변의 더 좋은 위치 아파트와 가격이 비슷하거나 높은 케이스가 나오는 것과 같이 말이다.
브랜드는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예시로 파타고니아라는 기업의 예가 나왔다. 스스로 만든 제품을 사지 말고 다른 제품을 구매하라고 하는 과감함. 과연 그런 과감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과거 삼성도 애니콜 화형식을 통해서 환골탈태한 이력이 있는데 그것이 단순히 쇼맨십이라고 하여도 직원들로 하여금 이러한 문제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조그마한 문제도 삼성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 준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당시의 삼성에 모토는 불량 없고 튼튼한 그리고 완벽한 것이 추구되지 않았을까? 그것이 바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고 사람들이 그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면서 가질 수 있는 안정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이런 부분은 한국의 브랜드들을 보자면 좀 답답한 면이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서 '속고 있다' 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위해서 너무나 많이 조작을 하거나 안전한 것만 추구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제 정보가 너무나 많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애플은 정말 대단한 기업이다.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틀을 계속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조차 '그건 고객 잘못'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오히려 고객들이 더 열광한다. 그리고 고객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제품을 보완할 방법을 찾는다. 세컨드 파티나 서드파티에서 엄청난 제품을 계속 만들어 준다. 그리고 애플이 하는 모든 행동이 사실은 애플 자신을 위한 행동임에도 그 행동 자체를 변호해 준다. 광기 어린 종교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현대 기업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솔직하고 독특한 그 모습들이 바로 열광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그럼 개인은 브랜드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저자인 김키미님의 브랜딩 방법은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카카오 브런치의 브랜드 마케터로서 책으로 승부한다. 책은 전반적으로 가벼우면서도 흐름이 유연하고 정말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군데서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느낌이 딱 든다. 나 역시 책을 쓸 예정이니 이런 부분은 좀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기획을 먼저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어느 날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서 짠하고 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할 것이 많다는 의미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중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부단히도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나는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까? 적어도 내가 기억이 되려면 나만의 특징을 한껏 뽐내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도 매일 찾아보고 있고 여러분도 찾아봐야 한다.
만드는 것도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 십년간 믿음의 상징인 브랜드라고 해도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브랜드를 확고히 하고 싶다면 브랜드에 어긋나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감을 절대 놓치지 않는 작가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두었다면 마감을 놓치는 순간 그 브랜드는 어긋난다. 이럴 때는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다시 브랜드를 공고히 해야 한다. 핑계는 계속 핑계를 만들게 되고 브랜드의 이미지는 점차 깎여 나가게 된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내용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스스로 만든 브랜드를 스스로 무너트리는 일은 하지 말자. 사실 유지가 제일 힘들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 책을 참고 하자.
항상 1월이 되면 각종 다이어리들이 날개 돋치듯 팔리고 헬스장과 요가 등등의 운동 시설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물론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그 특수를 누릴 수가 없어졌지만. 사실 해만 바뀌었을 뿐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신경을 써서 목표를 잡는다. 목표를 잡고 앞으로 하나씩 나아가다 보면 '작심삼일'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나 역시도 항상 1월에 많은 목표를 세우는데 목표가 하나같이 작년에 그대로 있던 그 목표들이다. 결국 작년에도 이루지 못했고 재작년에도 이루지 못한 것들만 남아서 하고 있는 것인데 왠지 모르게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이 있다. 나는 이렇게 의지박약이었나? 이 많은 목표 중에 왜 하나도 이루지 못했는가?
목표를 설정을 잘못해서 그렇다.
'살을 빼겠다' , '시험에 합격하겠다' 와 같은 목표는 목표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살을 어떻게 뺄 것인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대체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에 대해서는 목표를 설정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리고 단순히 합격이나 다이어트는 정확한 목표가 없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겠다면 '어떤 운동으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서 매월 얼마나 감량을 하겠다'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워서 진행을 해야 한다. 우리도 사람인지라 항상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하루는 괜찮아'가 쌓이면 무조건 실패를 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는 목표를 명확하게 해서 하루라도 손해보지 않게 마이크로 단위로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보상 설정이 필요하다.
뭔가 시작을 했는데 나중에 큰 보상으로 오긴 하겠지만 중간중간 이루고 나서의 보상이 없다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다이어트도 그냥 마냥 굶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보상으로 맛있게 많이 먹는 날도 있어야 그 날을 위해서 다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이런 보상의 경우에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성공하지 못해도 고생했다고 주면 안되고 문서나 글자화를 하여 명확한 목표를 잡은 다음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보상에 대한 것도 칼같이 목표도 철저하게 설정을 해야 된다고 한다. 생각에서 이뤄지겠지만 머릿속에 계속 남을 수 있는 목표와 보상은 그 목표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피드백도 중요하다.
혼자서 달려가다보면 내가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제대로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목표가 명확하더라도 그 과정에 대해서 피드백을 받을 필요가 있다. 과연 이렇게 가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는지 중간에 변경이 필요한 지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한 번쯤 들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유혹하는 사람들 말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아마도 이미 내가 목표로 한 것을 성공한 사람의 의견이 가장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멘토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나 자신과의 약속을 문서화하고 그것을 지탱해 줄 객관적인 멘토를 데려와서 집행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좀 나의 목표가 '억지로라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목표를 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뤄내야 한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아주 '작은' 부분의 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동일한 것을 하더라도 약간만 바꾸면 목표를 이뤄내는데 큰 도움이 되곤 하니 책을 한 번 자세히 읽어보고 본인의 목표를 다듬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도 나와 있듯 '셀프 넛지'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조그마한 변화가 결과를 바꿀 수 있듯 이렇게 차례차례 설정하고 하는 것에 약간의 넛지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1월에 딱 맞춰서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니 한 번 구매해서 쭈욱 읽어보고 스스로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난 두 번 읽는다^^;;(잘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