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5. 14:42
300x250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ESG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을 뜻하는 ESG는 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영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근본적으로 인류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공존하는 환경, 모두가 공평한 사회, 모두에게 공정한 구조, 이러한 세계야 말로 인류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공생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를 가능케 하려면 사회에 팽배한 인종, 성별, 계층, 사회적 지위 등 여러 기준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철폐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러한 연대를 훼방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10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뒤 여러 층위의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며 성장한 미셸 미정 김은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고질적인 ‘백인우월주의’에 있을 분명하게 짚어주고, 그 누구도 억압 받지 않는,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 원칙과 ‘좋은 행동’들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 모두의 투쟁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때, 그때 우리는 모두 평등한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저자
미셸 미정 김
출판
쌤앤파커스
출판일
2024.08.30



미국에서 차별이라는 것을 겪은 한국계 아시아인.
저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한 면이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많은 차별을 겪게 되는데 아마 미국에서 가장 크게 겪는 차별은 인종 문제일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인종 차별 때문에 몸이 망가지는 상황까지 간 경우도 있었는데, 사실 한국과 같이 거의 하나의 인종으로만 구분이 되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깊게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 같이 소위 ‘믹스드’ 된 곳에서는 이러한 이슈 때문에 항상 문제가 발생이 된다. 지금 당장 미국의 대선도 백인과 흑인의 싸움이라고 할 정도인데 평소에는 얼마나 많은 차별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차별이 많이 있을 것이다.

동양인 여성은 미국에서 어떤 차별을 받고 있을까?
사실 백인과 흑인의 차별은 이제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신기하지도 않을 따름이다. 그런데 사회의 비중이 어느 정도 높아짐에 따라서 오히려 백인과 흑인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생기고 있는데 인구 구성의 역전 현상 때문에 그런 듯하다. 하지만 동양계의 경우 나 홀로 난리인 중국인을 제외하면 아시아 쪽은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느끼는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나 영국에서도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물건조차 팔지 않는 가계가 있을 정도로 차별이 심한데, 그 와중에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받는 차별은 더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양계 여성인 저자는 정말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유가 어찌 됐건 차별 자체가 용납이 되면 안 된다는 것도 내 생각과 일맥 상통한다. 왜 다른 사람에게 굳이 피해를 줘야 하는가?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지금 세계는 오히려 역차별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의 경우 이미 많은 경우 불평등한 경우가 있기에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을 겪는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흔히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 하는 것인데 인종, 민족, 언어, 종교, 성차별 등에 편견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최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디즈니의 영화들인데 한편으로는 애초에 원작이 그런 내용이 아니었는데 원작 자체를 파괴를 하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고 그로 인해서 실제 상업용 영화의 성과가 과거와 같이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인어공주와 백설공주가 왜 꼭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여야 할까. 그러한 방향이 과연 차별을 없애준다는 대의 아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당연히 세상은 저절로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이 차별을 좀 더 없애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고 그만큼 세상도 조금씩 변화를 하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차별은 고통과 아픔을 남기게 된다. 차별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차별도 이해할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을 하지 못한 부분은 LGBT에 대한 부분인데 개인적으로 그것은 일반적은 다름이 아닌 정신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를 해 달라는 것에 대해서 나는 솔직히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이 나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한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나에게 주입하려고 할 때는 단연코 거부를 할 것이다. 그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하는 퀴어 축제는 정말 너무나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모든 것을 차별이라고 말을 한다면 외모도 나이도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과연 정말 못생긴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를 봐야 하며 늙은 사람이 가득한 카페에 가서 있고 싶을까? 기본적인 생각과 차별은 사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다만 그러한 차별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사장 막일 인력을 뽑는데 늙은 여성이 젊은 남성과 동일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기회는 균등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기회의 균등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것이 문제라고 외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바라는 이상향 같은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불가능할 것 같은 불평등 속에서 반대의 입장을 펼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을 덮으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
2023. 7. 2. 23:19
300x250
 
꼰대지수 낮춰드립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기존의 세대론은 기성세대에게는 꼰대 프레임을, MZ세대에게는 개인주의적이라는 편견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2020년 출간되었던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의 개정판으로, 기존 세대 담론의 중심추를 신세대에서 기성세대의 중간 지대로 옮겨놓아 세대론에서 조연처럼 여겨졌던 기성세대를 재조명함으로써 세대 갈등을 분열이 아닌 화합으로 이끌어준다. 국내 최고 명강사이자 한국의 데일 카네기로 불리는 조관일 박사는 지나치게 신세대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대론에 의문을 품고 이에 맞서는 도발적 세대론을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세대라는 프레임 속에서 서로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생하는 법을 배워봄으로써 갈등 시대를 슬기롭게 건너는 전략을 익혀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조관일
출판
21세기북스
출판일
2023.06.23

 

꼰대라는 말, 자주 사용하지 않는가?

나는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을 하지만, 이제는 꼰대라는 말을 들을 나이가 되긴 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꼰대라고 하는 것도 가끔 듣곤 하는데 애써 무시를 하곤 한다. 내가 하고자 한 것, 그리고 필요한 것을 말을 했을 뿐인데 왜 나에게 자꾸 꼰대라고 하는가? 뭐, 꼰대라는 단어가 좋은 뜻이라고 하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우리가 하는 말 중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이 몇 개나 되는가? 아마 당연히 아니니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겠지? 나 역시도 내 또래 사람들과 하는 말이 '요즘 애들은...'이니 거의 뭐 누구나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요즘 젊은 사람이 더 똑똑하다고?

뭐, 인정한다. 근데 어디까지나 지금 '10~20대' 애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신입사원이 오더라도 그 사람보다 훨씬 일을 잘 할 자신이 있다. 넌 오래 해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잘한다며? 그리고 꼰대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꼰대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참 이상하다. 물론 매일 자기 자랑이나 과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그리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냥 일반적인 사람이 하는 모든 말도 듣기 싫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너무 귀하게 자라서 그런 것일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는 의지 자체도 없다. 가끔은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내가 꼰대인가?

 

요즘 사람들 인내심 없다는 말, 사실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인내심이 없다기 보다는 뭐 하나 정확하게 알아보지 않고 시작한 다음 자신과 맞지 않으면 너무 빠르게 포기를 한다. 앞서서 정확히 모르니 당연히 시행착오가 존재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데도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회사 내에서도 이러한 세대 덕분에(?) 자유로운 부서이동이 가능할 수 있도록 소수의 길을 열어 두었다. 물론 소수의 인원만 바뀌겠지만 이렇게 통로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직률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부서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거의 1년 가까이를 교육을 했음에도 그냥 못하겠다고 하고 가버린다. 입사 전 그 '뭐든 잘하겠습니다'라는 외침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우리 꼰대 세대도 문제다.

나이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입 사원들보다 조금 더 빨리 왔을 뿐이다. 그것이 권리고 권한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나 역시도 과거를 잊어버리고 '왜 우리 신입사원들은 이렇게 하는 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반복하곤 한다. 스스로 하면서도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그 시절 분명 실수도 했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 있는데 지금 나의 모습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때 좀 더 도와줬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다 '알고만 있는' 선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선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다.

모든 선배들이 다 그렇지 않듯 모든 후배들도 다 동일하진 않다. 무엇이든 그냥 일반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성향이 있지만 나와 같이 함께 나가는 동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금 더 존중하고 조금 더 공존을 택한다면 사실 거의 대부분 '이해할만한' 약간의 차이 정도만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고정관념과 일반화가 많은 것을 가로막고 있지만 결국 한 배를 탄 사이가 아닌가? 같이 한 번 잘 해결해 나갈 수 있게 책을 읽어보면서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300x250

'생활 속의 독서 > 자기 관리 및 개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로벌 러시 해외진출이 답이다  (0) 2023.07.08
이용기의 사장 수업  (0) 2023.07.03
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  (0) 2023.06.07
네 인생 우습지 않다  (0) 2023.06.04
점프  (2) 2023.05.17
Posted by 오르뎅
2023. 3. 20. 23:10
300x250
 
플레이밍 사회, 캔슬 컬처에서 해시태그 운동까지 그들은 왜 불타오르는가
‘활활 타오른다’는 의미로 비난, 비방 등의 글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을 지칭하는 ‘플레이밍(flaming)’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플레이밍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이 책에서는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모두 다룬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악성 게시물, 사이버불링, 해시태그 운동, 캔슬 컬처 등 플레이밍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오늘날 사회가 어떤 대립 구조와 분쟁 상황을 안고 있고, 그 배경에 어떤 사회 구조와 시대 상황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사람들의 감정, 욕망, 이데올로기 등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 문맥을 이루는 요소와 정치, 경제 등의 동향을 파악해 플레이밍 현상의 사회적 의미와 맥락을 밝히고자 한다.
저자
이토 마사아키
출판
북바이북
출판일
2023.03.24

사회가 너무 각박하다.

사실 여러가지 면에서 사회가 뭐랄까 매우 각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여론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그냥 소수의 누군가가 소리지르는 것만 보여준다면 이제는 주변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문제는 그러한 소리를 여과해주는 장치가 없어서 그것이 맞는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그 소리를 받은 사람은 피해를 받는 문제가 있다. 당장 학폭이 문제가 되서 과거의 이야기를 모두 끌고 오고 있는데 과연 이것은 맞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물론 학폭을 했다는 사람을 옹호하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당장 교도소도 있고 재판장도 있는데 이상한 인민재판의 느낌이다. 뭔가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에 뭔가 있는데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이렇게 비난과 비방을 하는 것을 플레이밍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게 대부분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제일 중요해' 라는 것이 몸에 밴 나머지 내가 하는 것은 옳은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변질이 되고 있다. 일단 정치인들부터도 하나같이 나는 잘한거고 똑같은 것을 해도 남이 하면 다 죽일 놈이라고 난리다. 그러고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나 때는 원래 그랬다' 라던가 '이게 관습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참지 못한 대중들은 그들을 향해 비난을 한다. 근데 그것이 일반 시민에게도 동일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정치인들이야 원래 욕먹으려고 나온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일반인들은 그걸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는 소셜미디어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소셜미디어가 대중적이 되면서 자신을 드러내기도 쉬워졌지만 남을 비난하기는 더 쉬워졌다. 소셜미디어 안에 사람들을 보면 다들 너무나 부유하고 행복하다. 한국과 같이 비교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에서는 정말 쥐약과 같은 어플리케이션이 아닌가! 옆나라인 일본도 동일한 이슈를 겪고 있다. 단순히 올린 사진 하나에도 너무나 자세히 찾아보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단점' 을 찾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린다. 너무 인기 있는 것은 바로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는 바로 그러한 문제가 도사린다. 나를 알리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알리기 싫은 부분까지 보여줘야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굉장하지 않은가!

 

한국만큼 다른 나라 정치판도 서로 비난과 차별이 존재한다.

우파와 좌파, 누가 만든 단어인지는 몰라도 정말 징그럽게 짝짝 달라붙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공격한다. 항상 빈틈을 찾고 공격한다. 악성 댓글은 넘쳐나고 각종 비난의 한 중심에 서 있다. 심지어 숨만 쉬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비난한다. 너무나 비난을 한 나머지 누군가는 자살을 하기도 한다. 없으면 안되지만 정말 법적으로 유일하게 '싸우고 지랄해도 괜찮은' 것이 정치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뭐, 어차피 인도의 간디 선생님을 데려다 놔도 죽일 사람처럼 이야기를 할테니 말 다한거 아닌가. 책에서 나온 나이키의 모습은 사실 나이키도 소비자도 아닌 제 3의 소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의 정치도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누군가를 플레이밍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내가 비난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너무나 나쁘지 않았을까?  앞으로 필요한 것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자정작용이 아닐까? 남을 비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용서하고 화합하지 않으면 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의 잘못된 것을 신고하고 나의 잘못된 것은 무엇이 잘못이냐고 소리지르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잔잔한 물결에 파도와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
2021. 9. 20. 00:21
300x250

 

평등의 정의란 무엇일까?

최근 항상 평등이라는 잣대를 두고 말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똑같이 주는 것은 과연 평등일까? 육상선수의 모습에서 생각을 해 보면 막상 시작점이 모두 같아도 누구는 평평한 길, 누구는 오르막 길, 누구는 좋은 운동화, 누구는 맨발로 시작을 하는 것인데 과연 이것을 모두 고려해서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어디까지 평등이라는 잣대를 두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기회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정의로서는 맞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은 '불공평' 한 것이 맞다. 법적으로 이런 것을 평등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실제로 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성폭력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인식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가끔씩 들려오는 인도에서의 모습은 정말 추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말이다. 과거 여자를 '소유물' 취급을 했던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면 평등이라는 것을 제창하더라도 왜 그때는 그게 당연시 여겨졌는지 조금 의문이다. 당장 지금도 평등하지 않은 사례들이 너무나 많이 있으니 말이다.

 

피부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난 솔직히 생각해 보면 지금도 '피부색 자체가 권력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쩌면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다른 그룹을 비난하거나 하게 되는데 본능적으로 우리는 백인은 존귀하고 흑인은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차이에 대한 결과가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당장 이민자들의 국가라고 칭송받는 미국에서조차 흑인은 항상 가장 바닥에 깔려있다. 뭐 비슷하게 아시아 계통도 동일한 수준이긴 한데 오히려 그들이 미국 내 백인들에게 반기를 드는 것보다는 아시아인들과 흑인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들조차도 그런 짓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라이베리아라는 나라가 생길 때 미국에서 핍박받던 아프리카 계열 사람들이 가서 만든 나라라고 하여 평등이라는 것을 추구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원주민들을 핍박하여 나라가 완성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되었다고 한다. 피부의 차이도 차이지만 더 가지고 있거나 유리한 쪽이 항상 자신들의 성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 '차이'라는 것에 근본 이유가 아닐까?

 

한국에서는 성차별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뭔가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젠더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남자는 여자들을 메갈이라고 하여 비난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은 한남이라고 하여 비난한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 침입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갈등이 계속 생기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남성에 대한 이권이 많이 있어 그곳을 여성이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불합리를 다양하게 펼치게 된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여자는 행정과 구급만 담당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남성은 대부분 현장업무를 진행하게 된다. 만약 나같아도 동일한 봉급을 받고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굳이 현장에 가서 일을 힘들게 해야 하는가는 조금 의문이 든다. 이 경우 소방공무원을 뽑을 때 같은 조건으로 뽑던지, 아니면 각 직군에 따라 뽑던지 하는 방책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남녀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뽑는 보직도 다르게 되어버리니 서로 비난만 하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말 그대로 '나와 있는 대로 지원'을 했기 때문에 남녀가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 조직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아직 변하지 않는 상황이니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변경하여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중간지점의 형태로 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더 유리하다?

이것도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Yes'이다. 실제 회사 면접을 가서도 더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통과할 확률이 훨씬 높다(나 역시 면접관을 해 봤지만 본능적으로 그렇다. 악감정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인정을 해 버리게 된다면 현재 얼굴을 보고 하는 면접이나 사진을 붙여서 하는 서류 심사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외모가 제일 처음 기준이 되버리면서 그것에 적합하지 않다면 자신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결론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기들조차도 본능적으로 외모를 보게 되는데 그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게냐만은 우리 스스로도 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이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책의 말미에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사실 '차별 금지' 에 대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하고 있으나 바로 동성혼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 논란이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그런 것은 아니나 실제로 법을 뜯어보면 무조건 차별 안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권고'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가 있다. 향후 어떤 방향으로 법이 더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로만 보자면 무조건 금지한다는 의미는 아닌데 법의 테두리가 그렇게 알려져서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있다. 사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왜 당당해져야 하는지는 나로서는 의문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같이 가지고 있다. 어쩌면 법은 법 그 자체로서는 굉장히 무심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 도움이 될 수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차이와 차별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좀 성숙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은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300x250

'생활 속의 독서 > 사회_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으로 보는 돈의 역사  (0) 2021.10.16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  (0) 2021.10.15
특종을 쫓는 종횡무진 뉴스맨  (0) 2021.08.29
누워서 과학 먹기  (0) 2021.07.30
디지털을 말하다  (0) 2021.07.25
Posted by 오르뎅
2016. 5. 11. 21:49
300x250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다르다고 한다.

나 스스로도 내 자신이 소수가 아닌 다수일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소수가 되는 순간 뭔가 대단한 불편함에 사로잡힌 것 같이 느껴진다. 이것은 어찌보면 나 자신이 소극적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다수가 항상 옳다고 판단하는 생각 '차별' 이라는 것에 대해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사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든 이유는 나의 첫째 아이 때문이다.

항상 평평한 고속도로만 질주하고 있던 내 인생에서 어찌보면 큰 장애물이 나타났는데, 첫째의 장애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울기도 했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부질없는 것이 뭐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래나 저래나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이고 내가 언제까지나 보듬어주고 이끌어 가야할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나 동일하듯 내 자식이 남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놀림받고 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은

'내 아이가 그냥 평범하게 남과 비슷하게 자라줬으면...'

이라는 작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이민까지도 고려해 볼 만큼 내 아이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내가 서두에 이야기 했듯, 그동안 차별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 반대 입장이 되자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HIV, 흔히 에이즈라고 불리는 이 병은 그냥 머리 속에서 걸린 사람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 병명이기도 하다. 왠지 모르게 그냥 걸리면 더럽고 동성애를 했었을 것 같은 그런 존재이다. 특히 여러 매체에서 안 좋은 면만 부각하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이 있어 머리 속에 더 그렇게 박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진실은 꽤나 건너에 있는 듯 하다.

1. 전염성이 미치도록 강한 병은 아니다. 즉 일상생활에서 걸리는 것은 거짓말이다.

2. 걸리면 죽는 그런 병도 아니다, 에이즈의 대명사인 매직존슨 정말 징하게 오래 산다, 심지어 죽지도 않는다.

3. 의외로 걸린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수도 있는데 너무 멀쩡하다.

 

저 병에 걸린 것이 자랑거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않고 그냥 다수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1960년대 우매한 국민을 선동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니 누군가는 진실을 바라보고 그 진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그러라고 만드는 신문/방송인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 것도 작금의 현실이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즐겁지만도 항상 슬프지만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이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사자는 평생의 아픔이 남는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질병과 장애는 어쩌면 죄를 짓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보여지고 있지만 이런 책들이 우리 사회의 생각을 바꿔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는가 싶다. 그저 즐거움으로만의 책이 아닌 정확한 사실과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 제시와 같은 것 말이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