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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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사실 여러 기사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 인가를 물어본다면 상당히 당황스러울 수 있다.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기사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볼 때 나오는 진실은 뭔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분명히 결과는 똑같은데 과정과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부분이 다르다.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에서의 여러가지 내용에 대한 것들이 있었지만 나는 한국의 많은 기사들이 이와같이 그저 '만들어진 진실' 속에서 기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을 해 보았다.

 

예를 들면 이와 같다. 보통 보수에 가까운 신문을 보자면(조선-중앙-동아) 최근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이 경제와 비능률적인 정치 부분에 대해서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논조를 가지고 있는 한겨레 등은 동일한 분야에 대해서 현정부에 매우 호의적인 결과만을 내놓는다. 일단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에 대해서 매우 혼동이 올 수 밖에 없다. 결과가 동일한데 과정이 너무나 다르게 판단된다는 것은 무언가 기자의 말장난에 우리가 속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자신이 '믿고 싶은' 결과에만 믿음을 갖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각 신문 기사들을 보자면 서로 자신이 믿고 싶은 기사만 골라 읽게 되는 이상한 편향적 형태가 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 홍수 속에서 계속 쓸려내려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물론 1+1=2와 같이 불변의 법칙과 같은 것이 그런 기사의 내용은 아니다. 각 기자의 신념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각 소속 회사의 기본 이념에 따라 기사를 보도 하기 때문에 실제는 거짓인데 그것을 진실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광우병 사태에서도 보듯 진실이 아닌데도 그 진실을 왜곡해서 보도한 경우에는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대규모 집회 속에서 보여진 그 광란 속에서 결국 남은 것은 그냥 '한국이라는 나라는 서로 이념이 대립되는 경우에는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라는 결과만을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산 소고기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심지어 당시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죽는다는 연예계 사람들조차 자신의 사업장에 버젓이 미국산 소고기를 팔고 있는 경우도 있다. 누가봐도 이상한 상태인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잘못된 것을 절대 용인해 주지 않는 사회의 모습도 이런 '우기기'의 한 형태가 아닐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이라는 것을 심어준다. 이 권선징악은 결과적으로 보았을 떄 항상 악을 행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결론을 가져와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는 사회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권악징선이다. 물론 이렇게 된 까닭에는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아예 기사 자체를 보지 않는 국민에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리 신고하고 까내리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면서 '성공' 이라는 열매를 몰래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어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은 맞는데 사회는 아니라고 하는 상충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나의 손해가 너무 큰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회에서는 그것을 '님비' 현상이라고 나쁘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나쁜 것일까? 나 자신을 위한 것인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어디부터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서 그저 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왜 저런 상황이 되었을까라는 다각적인 시선이 분명 필요하다.

 

이 책의 의도는 명확하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그 모든 것이 사실 진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매우 동의하는 바다. 왜냐하면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 사실에 사실은 다른 배경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믿던 철학이 사실은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을 커가면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비판적인 사고와 더불어 어떤 진실을 하나의 시선이 아닌 여러가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살인을 한 사람은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내 배우자이고 내 자녀라고 하면 그 안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나 할까? 우리는 그 진실에 대해서 너무 겉면만 보고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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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8. 11. 2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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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 어떤 말일까?

어머니와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틀에 한 번 연락을 해도 꼭 하는 말이 있다.

"난 잘 지내고 있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닐까 항상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지내다 보니 난 잘 지내고 있다. 심지어 아파서 병원에 갔었어도 결론은 '난 질내고 있다' 이다. 어쩌면 굉장히 평이하고 단순한 말인데, 책으로 읽어보니 그 평범한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 난 잘 지내고 있는데 사실은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기 귀찮으니 잘 지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군대 가기 전에 책이라는 것과 마주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 읽었던 월간지 중 '페이퍼' 라는 것이 있었다. 사실 군대 가기 전에 읽긴 했지만 너무 무미건조(?) 하다고나 할까 생각보다 너무 평이하고 밋밋해서 잘 읽어보지 않았는데 군대 가서 읽기 시작하니 뭐든 내 마음에 와닿고 그러더라. 아마 그 떄는 백과사전을 읽어도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런 무미건조한 일상같던 내용들이 마음에 굉장히 와 닿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후에 폐간이 되긴 했지만 그 글 자체가 이상해서 폐간된건 아닐지라. 분명 글은 존재하는데 온라인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막해서 멈춤을 당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렇게 보면 페이퍼라는 잡지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때 그 페이퍼라는 잡지에서 '앳 코너' 라는 내용으로 정리된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읽다보니 정말 읽어봤던 내용이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저자의 이름을 보고 알아차렸다. 물론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옛 추억이 있어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읽었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설명해 보자면...

 

당신과 나의 거리

 

나이가 많아질수록 특별함과 새로움은 사라진다.

경험치가 알려주는 예측은

서로를 위한 거리와 경계를 만들고 수위를 조절하게 한다.

하지만 가끔 그 조절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로 인해 내 인생의 숨통이 좀 더 트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를 가서 가장 많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사람과의 거리' 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차피 1년 동안 매일 볼 친구들이기 때문에 서먹하다가도 결국은 반에 있는 전 인원을 다 알게 되기 마련이다. 능력이 되면 학교 안에 있는 친구들을 더 많이 알 수도 있는데 대학교는 그게 안되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하라고 한 것이 처음이라 너무 어색했고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던 과에 배정되기가 싫어서 몸부림 쳤지만 공부는 하기 싫었고(대학교 1학년의 본분은 술이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다) 결국 원하지 않는 과로 유배(?) 되게 되면서 기존에 만나던 사람과도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가볍고 먼 사이였을까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시점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사람과의 거리를 고민하게 되다가 회사를 가서 보니 이건 좀 더 심한 것 같다. 자주 보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좋았는데 가까워지기도 싫고 멀어지기도 애매한 사람이 너무 많다. 어디까지가 나와 당신과의 거리이지? 라는 생각이 드는데 답을 해 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친한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지금도 많은 인맥을 자랑하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그 때의 거리를 묻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난 잘 지내고 있으니 신경 안써도 된다'

딱 그정도의 거리가 좋은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 그정도가 아닐까?

책은 이러한 상상의 나래를 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고민하게 한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일상적인 고민들이고 나는 과거에 어땠고 이제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다시 서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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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5. 2. 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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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S 와 요르단과의 전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요. 거기에 일본도 살짝 다리를 걸쳐 있어서 상당히 애매한 경우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렇게 돈으로 흥정하는 일이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근원적으로 왜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고민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문화에 맞추어 표현하는 것이 정당화 되다 보니 발생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전혀 충돌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 에 대해서 심도있게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서양의 대학교로 유학을 가게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적은 단순히 언어적인 문제가 이닌 '왜 동양계 사람들은 발표를 전혀 하지 않는가, 아니 발표를 하게되면 떠는가' 에 대한 의문입니다. 사실 해외로 유학을 가게 되면 그 나라 교육의 장점을 배우고자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지만 몇 십년간 똑같이 배워왔던 동양계 사람들에게(중국... 은 예외로 합시다. 워낙 다른 경우가 많아서요..) 서양의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강제하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입니다. 실제로 토론을 중시하는 교수 밑에서는 그리 높은 학점을 받지 못하곤 하는데요, 이 책에 나와 있는 예를 보자면 발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양계 사람은 필요하거나 중요한 것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 라는 다른 문구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어쩌면 서양사람이 어느정도 배워야 할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이렇게 동서양의 문제가 어떻게 보면 서로가 조금만 이해하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지만 이 문제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로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여러 베스트셀러가 존재할 정도로 이론상으로는 염색체 하나 다른 존재인 남자와 여자는 절대 일치할 수 없을만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지금까지는 힘이 필요한 사회였기 때문에 남성 우선 사회가 이루어지곤 했지만 결국 그것을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 보니, 이제는 서로 비슷한 능력 아니, 노력에 의해서 여성이 더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남성 위주의 사회이다 보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제조업에서는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력,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사람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진국에서는 이미 제조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수익률도 거의 나지 않을 뿐더러 따라오는 신흥국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강력한 리더십이 아닌 부드러운 리더십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여성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지요.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하던 것을 적용만 하면 되니 어쩌면 그냥 불도저같이 앞으로만 충돌하는 남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그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점점 차지해 오는 이 부드러운 리더십이 그저 힘겹기만 할 뿐이지요.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이 모습은 끝없는 충돌이 발생되게 됩니다. 서로 단점을 가지고 말이지요.

 

한국의 경우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미국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경우 서로 인종과 피부색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일어나곤 합니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화합을 보여준다는 미국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간 서로 간에 쌓여있는 불신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실험에서 보듯, 같이 생활을 하다보면 어색한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따로 생활을 하면 고정관념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섭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의 논문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충돌에 대한 내용이니 말이지요. 어쩌면 이런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서로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충돌없이 살 수 없지만 그 충돌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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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2. 1.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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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창의성... 최근 기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개발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덕목도 창의적이고 신기한 것들에 현혹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도 생각이 굳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책을 받아들고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아, 일본책... 이거 또 너무나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들만 나열해 놓았겠네, 별로 재미 없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정관념이 박혀 있던 것이라고 생각이 되겠지요. 경제/경영/자기관리 서적에서 일본인 저자인 책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그렇게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내용 뿐이라 생각이 닫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장기 불황으로 인해서 기존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대국의 꿈을 키워가며 세계를 정복하는 일본 기업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순위도 점차 내려가고 있고 방송에서도 중국보다 훨씬 적게 나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프리터 족이라는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늘고 있고 취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인구가 한국에 2배 이상 많기 때문에 더 문화적 다양성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 중에 하나인 한국도 그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언젠가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지켜야 겠다' 라고...

생각을 뛰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엄청난 발명을 하여 노벨상을 타는 것? 엄청난 백신을 개발하여 거대한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 아닙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으며 그것을 실현하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10가지 이야기들은 '필연' 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다가와 '실현' 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들입니다. 그만큼 아이디어라는 것은 주변에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생각치 못한 점도 있지만 실현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여 아직 실현하지 못한 것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특히 '긴자 꿀벌 프로젝트' 는 수익성보다는 다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누가 시내 한 가운데서 양봉을 할 생각을 하겠냐만은 그것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실현의 열매입니다.

책을 꼭 읽어보라고 하고 싶은 점은 아직 한국에는 들어온 적도 성공한 적도 없는 내용들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익성이 어마어마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느정도 공공성이 가미되어 있고 무엇보다 초기 투자비용+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에 있는 아이템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도 갖자는 의미에서 저자는 소개하고 있는 듯 합니다. 명사적인 상태에서 동사적 상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고 생각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주위에는 수많은 사업 아이템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알았으면 이거 안쓰고 바로 사업합니다.ㅋㅋㅋㅋ) 생각을 하기 어렵다면 지금부터 주위 사물에 대해서 약간 비틀어서 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사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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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