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1. 11:04
300x250
 
죽어도 컨티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나 미래를 약속한 그는, 더 큰 성공을 위해 이 지혜를 나누기로 결심한다. 쉽사리 설명하기 힘든 ‘부자 되는 법’을 말하기 위해 그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린다. 전에 없던 신개념 자기계발 소설 『죽어도 컨티뉴』는 주인공 해직과 저승사자의 대화체로 진행된다. 사후에 펼쳐지는 저승사자의 수업을 따라가노라면 해직과 함께 자연스럽게 의식 발전에 이를 수 있다. 두 세계에서 펼쳐지는 갈등이 마침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 이야기의 순수한
저자
최해직
출판
노들
출판일
2025.03.20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를 한다고 할까?

예전에 명상 시간에 내가 지금 입관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명상해 보라는 시간이 있었다. 실제 옆에 관과 같은 모형을 가져다 놓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서 누워있었는데 살짝 덮자마자 없었던 폐쇄공포증이 나타나기도 했다(시야가 없어지니까 진짜 무섭긴 하더라) 그런데 어떤 것부터 생각이 났냐고 하면 당연히 내 가족들부터 생각이 났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내가 후회할 일이 먼저 생각이 났다. 내가 가족에게 그때 왜 그랬을까, 내가 조금만 양보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 번만 더 생각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와 같은 그런 생각 말이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처음에 이 책은 사실 '부자'라는 단어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저승사자를 만나서 부자가 되었다라? 사실 그냥 소설책으로만 생각을 했는데 막상 시작이 되면서 뭔가 소설과 같이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작하는 저승사자와의 이야기가 꽤나 재미있게 시작되었다. 저승사자에게조차 말장난을 하는 상황이란, 저자는 아마 누구를 만나도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시작되는 저승사자의 이야기는 '이미 죽었으니 바로 데려가? 아님 반으로 갈라줘?' 이런 식이다. 그런 와중 과거를 한 번 되짚어 보라는 기회가 되어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내가 앞서 말한 것과 저자도 동일한 생각을 하나보다. 이혼을 했고 다 잃었지만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때 왜 그랬을까?

그냥 지나가도 충분한데 굳이 들쑤신 경우가 있지 않은가? 영업을 하던 사람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몰아치는 경우, 여자친구와의 대화 중 굳이 자존심을 세울 필요가 없는 내용인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경우(이건 뭐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반대로 기회가 왔는데 굳이 귀찮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하는 사람을 기회주의자로 몰아가는 경우 등과 같이 기회가 왔을 때는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정작 필요 없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더 많이 있었다. 그가 이혼과 실직을 한 이유가 바로 그런 것에 있다. 왜냐고? 결국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이루어지게 되니까 말이다.

 

과거 '시크릿' 에서 말한 것이 결코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내가 원하면 온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고 하는 한편으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인생을 항상 고민하게 하는 것은 '1회성'이라는 문제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죽으면 끝이고 컨티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뭐든 선택을 해야 하고 그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다시 윤회한다면? 그러면 뭔가 도전 정신이 생기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좀 더 경쟁적이 아니라 조금은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물론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책에서 생각을 했을 때 내가 나를 다시 바라보면서 생각할 기회가 있다면 많은 것을 바꾸고 싶긴 하다. 그리고 나약했던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서 '지금 이게 기회라고!'라고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나는 내가 꿈꾸는 것에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있는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냥 단순히 '부자 되고 싶다!'라고만 생각을 하게 되면 얻는 것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이러한 꿈을 꾸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로또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고 정작 로또는 사고 있지 않은 현실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뭔가 간절히 바란다면 그저 꿈으로만 남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특히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직접 요구하여 얻어내는 것이 맞다. 어쩌면 이런 교훈이 이 책을 읽어야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객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
2025. 1. 12. 21:52
300x250
 
60에 40대로 보이는 사람 80대로 보이는 사람
60부터는 외모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며 인생 후반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다면 지금까지의 습관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60에 40대로 보이는 사람 80대로 보이는 사람》이 출간됐다. 장수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에서 최고의 노령 의료 전문 박사로 꼽히는 저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60부터는 노화 속도가 사람마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시기여서 어떤 사람은 40대로 보이고 어떤 사람은 80대로 보일 정도
저자
와다 히데키
출판
센시오
출판일
2024.12.16

 

연말에 송년회를 했었는데...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가기 시작하면서 많은 대화의 중심거리가 이성이 아닌 건강으로 옮겨갔다. 특히 건강검진 내용이나 누가 얼마나 아팠다는 내용, 그리고 남자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인 탈모 등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마치 20대 때 군대 다녀와서 군대 이야기 하는 느낌이랄까? 어느 누구 하나도 소외되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 보면 우리 평균 나이는 80대이다. 절반 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뭔가 망가지고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을 생각해서 뭔가 줄이고 덜 먹고 운동하고 하는 것을 계속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여기 일본에서 쓰인 책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건강적인 지식들은 사실 서양에서 넘어온 것이 많다. 미국을 가보면 정말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 것이다. 뚱뚱한 사람은 너무 뚱뚱하고 날씬한 사람은 너무 날씬한, 그런데 상대적으로 뚱뚱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이미 BMI지수가 30이 훌쩍 넘어가는 사람 천지라는 의미이다(내 툭 튀어나온 배를 보면서 BMI를 체크해 보면 27 밖에 안 나온다. 대체 30이 넘어가면 얼마나 많이 튀어나오는 걸까) 그런 사람들에게 노년에 육식을 줄이고 채소를 먹으라는 것이 어쩌면 서양에서는 당연한 처방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한국이나 일본은 아니라고 판단이 된다. 물론 우리도 육식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서양의 경우 스테이크를 한 번에 한 개씩 먹는 사람들 천지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음식은 다양하게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튀김은 무조건 먹으면 안 된다? 닭은 가슴살만 먹어야 한다? 아니다. 우리 피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단백질인데 육류만큼 그것이 효율적으로 보충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몸의 보충량이 점점 줄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거꾸로 단백질 먹는 양을 늘려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 채식만 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양과 식사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젊어 보인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이다. 서양의 경우 애초에 그런 식사를 많이 하니 줄이라는 것이 맞고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꾸며야 한다.

나는 사실 지금도 뭔가 꾸미거나 하는 것이 귀찮다. 그런데 나이가 든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멋진 슈트를 입은 사람들이 좀 더 젊고 생기 넘쳐 보이는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바로 외적인 부분이 우리에게 있어서 많이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외적으로 고급스러운 것을 갖고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노년의 사람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나이에 맞지 않게 꼴값이야'라는 생각보다는 '와,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나이 어린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보다 더 멋지다고 할까? 그리고 멋진 슈트 등과 더불어 잘 관리된 외모는 나이를 잊게 해 줄 수 있다. 지금 60대는 50년 전 60대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외모를 가꿔야 한다.

외모가 젋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산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목적성이 없어지면 삶의 의지도 없어질뿐더러 뭔가 움직이기를 마다하게 된다. 항상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생기가 돌 수 있다. 오히려 욕심이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과 같이 이제 60이 되더라도 여기서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고기를 좀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양한 음식을 먹고 외적인 것을 가꿔야겠다는 다짐도 해 보았다. 여러분도 같이 하지 않겠는가?

300x250
Posted by 오르뎅
2021. 10. 4. 20:18
300x250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시작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불행한 그 시점에 정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머피의 법칙과 같은 날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쩌면 자살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냥 '자살해 버렸네요'라고 하면 내용이 진행될 수 없으니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도서관으로 그녀, 노라가 움직이게 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달러 구트의 경우 잠을 자는 시간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묘하게 몽환적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역시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정말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할까?

 

만약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노라는 지금 당장 보면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결혼도 포기했고 수영도 포기했으며 음악도 포기를 했다.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것이 없고 다 원래의 삶에서 도망쳤다. 왜 도망쳤을까? 단지 걱정이 많고 쉽게 포기해서 그런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는 일반적이지 않은 결정을 하곤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문제일까? 아니다. 사실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쉬웠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큰 고민 끝에 결정을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결과는 좋지 않았고 노라는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살을 하기 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피면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묘하게 말이 안 되면서도 되는 거 같은 느낌이다.

 

다른 삶이 항상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욕망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연 내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이 진짜 욕망인가? 유명한 가수가 되어 보기도 하고 펍의 주인이 되어보기도 하며 수영선수가 되어 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해피엔딩을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결과는 썩 탐탁치 않다. 아버지가 외도를 하거나 과거의 연인이 스토커가 돼서 돌아오기도 하며 오빠가 단명을 하기도 한다. 그것을 원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그 책 속에서는 그렇게 내용이 흘러간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게 나오는 책은 없느냐고? 당신의 인생이 그런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뭔가 읽으면서 '행복 총량의 법칙'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했다. 많은 것을 얻으면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야 한다는 의미 같았다.

 

진짜 내 욕망을 알았을 때.....

이것이 진짜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과연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내게 오기만을 바라볼 것인가? 사실 움켜쥔다고 하는 것이 맞긴 하겠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움켜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노라도 본인이 꿈꿔왔던 꿈 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던 꿈에 안주하려고 하다가 다시 도서관을 나왔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을 가져왔다. 사실 결국 그것 조차도 '가정' 일 뿐이다. 현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가장 아름답게 살 수 있지만 그곳에서 노라는 과거를 모르는 하나의 사람일 뿐이었다. 적응하고 싶지만 그들과 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것이 없는 삶. 도서관에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과거부터 이어오는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살을 취소!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을 때

그녀는 삶에 대한 간절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우리도 역시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사람들은 뭐든 긍정적이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녀는 이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게 된다. 과거는 어떻게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교훈이다. 도서관 사서였던 엘름 부인에게 찾아간 다음 감사함을 느끼고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딛는 노라는 어쩌면 미래가 어둡다고 불평만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00x250

'생활 속의 독서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혼황후  (0) 2022.01.22
편리한 진실  (0) 2021.11.03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2021.09.23
위대한 상인의 비밀  (0) 2020.12.26
모두 다 사연은 있다. 네 지붕 한 가족  (0) 2020.09.09
Posted by 오르뎅
2020. 1. 8. 00:16
300x250

웰빙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웰다잉 시대로?

사람이 불과 몇 십년전만해도 60~70세면 엄청 오래 사신 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60~70세면 청춘이라고 한다. 이것이 축복인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인생을 좀 더 오래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이룩한 의학 기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즐기면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 아름답게 세상과 이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이 된다. 심지어 스스로의 영정사진을 미리 만들고 그것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으니 죽음에 대해서도 어쩌면 단순히 먼 이야기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든 뭐든 모든 생명체에게는 동일하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 있어야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더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죽음이라는 것 떄문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따르게 되고 종교라는 것이 태어나게 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사후에 어떤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외의 모습을 보면 죽음조차 축제로 느껴질만큼 흥겹게 진행을 하는 곳도 곳곳에 있다. 배우자의 죽음이나 자식의 죽음같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슬픔이 있지만 그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도록 축제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즐기기 위해 생일 잔치를 준비하는데 자신의 노모가 생일 이전에 먼저 돌아가셔 버렸다. 본인 생각에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일과 노모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진행하고자 친척을 부르는데(한국과는 다르게 하루만에 올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경우도 많이 있기에 우리 정서에는 다소 안 맞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로부터 발생되는 에피소드들이다. 이렇게 줄거리를 적어놓긴 하지만 그 안에서의 대화들은 전혀 당장 죽을 사람처럼의 대화가 아닌 뭔가 느긋하고 평범한 그런 모습의 대화가 이어진다. 죽음도 탄생도 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일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라 생각이 된다.

 

책의 마지막을 덮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을 했는가? 물론 아직 나이가 불과 30대이지만 당장 내일 죽을지 100년을 더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항상 이런 가정 같은 것을 해보지 않는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여타의 종교에서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긴 한데 지금은 어떤 것을 할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결론만 살짝 이야기하면 주인공은 마지막에 죽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이 마무리할 준비를 계속 한다고 하니 주인공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는 어떤 결말을 내고 싶었을까? 열린 결말로 마무리는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
2019. 3. 3. 21:57
300x250

 

여성 상위시대?

최근 남자로서 바라보는 시선은 '여성 상위시대' 가 아닌지 궁금했다. 뭐든지 레이디 퍼스트라는 이야기가 있고 뭘해도 여자가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을 해보면 그들이 '왜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과거를 돌아다 보면 많은 희생을 겪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실 지금 사회가 여성 상위시대라고 하고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동안 없던 '평등' 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와중에 그것을 이용하면 여성도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사회는 이렇게 서로 평등한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힘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남자의 입장에서 이제 무조건적인 힘이 '필요없는 세상' 으로 바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가 아닌 아주 예전 부계 사회의 극을 보였을 때의 모습을 그린 내용이다. 소설이기 때문에 실제로 있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의 사회상을 많이 반영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지금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남성 우월주의와 더불어 결국 여자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 때문에 살아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인 야난의 조그마한 반란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결국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겪었어야 할 많은 상실감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책이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아닌가? 사실 최근에도 그런 말을 하는 딸이 많은 것을 보면 언제나 있어왔을 내용이긴 한 것 같다. 엄마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엄마에게서 한계를 목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딸들은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간다.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과 자녀를 훈육하는 방법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어떤 결핍도 그대로 닮아가게 된다. 나 역시 나의 아버지와 크게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인 메리를 맘에 들지 않는 남자에게 시집보내지 않기 위해(사실 그녀의 동생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늑대를 빌미로 다른 곳을 향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때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남편인 티무와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녀는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패인 '임신' 을 활용해서 마음을 돌리려고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가에 혼란이 온 남자를 결국 설득시키지 못하고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정말 너무 서글픈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도 그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의학이 좋아져서 단지 생명만 연장되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부족에서 가장 이쁘다고 소문난 야난의 일대기는 결국 많은 남자와의 염문 끝에 아이를 낳다 끝이나는 것, 그것이 그 당시 그녀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덮고 나서 많은 여운이 남는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책의 뒤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면서 아쉬운 면이 있지만 더 어떤 내용으로 이어가야 할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저 사회를 부수는 일을 할 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면 지금 사회의 여성들에게 사회를 부수지 못하면 그저 순종하라고 하는 하나의 벽을 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떄다.

300x250
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