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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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이 책은 안데르센이 집필한 160여편의 동화 중 특이한 요소를 가진 잔혹동화들을 모아서 집필한 도서입니다. 안데르센은 동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인간성의 본질, 도덕적 갈등, 사랑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 철학적 질문들을 던졌는데, 이 질문들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첨부해 독자가 동화를 읽으며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과 예술적 재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색적인 메시지들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 내려가며, 동시에 아름다운 원문의 문장 그대로를 음미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책은 ‘인간을 파멸시킨 욕망 잔혹동화 / 목숨과 맞바꾼 사랑 잔혹동화 /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마법 잔혹동화 / 사유에 묻히게 하는 철학 잔혹동화’ 네 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들이 대응하고 위기를 겪는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생각할 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동화 속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달아주고, 독자들에게는 사랑과 용기, 인내의 가치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독자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통찰할 기회를 주는 도서입니다.
저자
안데르센
출판
센텐스(SENTENCE)
출판일
2024.05.07

 

당신은 안데르센 동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인어공주'의 맨 마지막이 새드엔딩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디즈니에서 나오는 인어공주는 결국 역경을 딛고 왕자와 사랑을 성공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디즈니 만화는 결국 권선징악이니까?) 실제 안데르센의 소설 내용에서는 왕자를 사랑했지만 왕자가 다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한다고 해서 결국 자살을 택하고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결말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안데르센 동화는 사실 동화가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그저 소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글은 그 사람을 투영한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글을 쓰다보면 나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글이 나오게 된다. 마치 직장인이면 직장인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던가, 자영업자라고 한다면 고객의 응대에 대한 내용 말이다. 안데르센이 살던 시절 안데르센은 남자였음에도 남자를 사랑했고 처음 고백을 했던 사람에게 차인 이력이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글에 투영되는 것이 인어공주와 같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람으로 결말이 나게 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 동화로 알고 있는 많은 내용들이 사실은 동화가 아니라 잔혹한 내용으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안데르센 동화의 내용과 사뭇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걸 생각하면 디즈니가 정말 대단한 회사라고 생각을 해야 할까?(원작마저 바꿔버리는 능력!)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동화이다.

내 인생이 지루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매우 재미있는 동화가 될 수 있다. 상당히 긴 소설로 알려진 '눈의 여왕'은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국 그 기억을 찾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기서 나오는 '얼음'은 감정의 억눌림과 분리를 나타낸다고 하며, '눈'은 깨달음과 순수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이와 같은 내용이 어릴 적 안데르센이 얼음 위에서 미끄러져 생긴 상처에서 비롯된 동화라는 이야기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 삶 속에서 이렇게 미끄러진 정도이지만 동화로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인생은 참 재미있고 훌륭한 동화 속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냥팔이 소녀는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 성냥을 만드는 회사는 몸에 매우 위독한 물질로 만들었었고 돈이 없던 가난한 소녀들이 일을 하다가 몸이 나빠지면 성냥을 주고 내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성냥팔이 소녀 역시도 그와 동일한 상황에서 내용이 진행이 되고 결국 촛불 하나씩의 행복감을 맛보지만 마지막에는 차디찬 시신으로 남겨지게 된다. 동화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대에 슬픈 일을 꼬집을 수 있었던 것은 안데르센의 또 하나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었던 그 시기. 우리는 왜 어린 소녀의 죽음을 통해서 슬픔을 느껴야 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기록처럼 남긴 사람은 왜 별로 없었을까.

 

인생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안데르센이 말을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사실 생각보다 '인생은 잔인하다' 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많은 명성을 얻었지만 초기에는 그저 글 쓰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랑에도 실패했고(많은 무리수가 좀 따랐지만...) 불우한 시절을 보냈으며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은 상태였었다(집안이 힘든데 글만 쓰고 있으면 아마 그리 좋아하지 않을 듯...) 글을 쓰면서 버텨나갔을 모습을 생각해 보면서 잔혹동화 속 문장들의 모습은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차이가 없어서 왠지 모르게 아픈 부분이 있다. 하지만 또 그러면서 하나씩 새로운 이야기들이 꽃피지 않을까. 안데르센 동화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나타나게 해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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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2. 6. 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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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은 어떻게 없어지는가?

우리는 동심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 치고 동심이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 책에서도 주인공은 동심이라는 것에 조금은 의아함을 나타낸다. '그럴 시간이 없다'라는 이유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학습에 있어서는 '그저 열심히 엉덩이 붙이고 하면 된다'라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된다. 과연 그럴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배워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다. 단지 사람이 많다는 이유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줄고 있어서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왜 변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변하지 않는 점을 꼬집는다.

항상 백 년 전통, 20년 명문으로 이끈을 자랑하는 교감 선생님은 과거에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주인공인 우주의 어머니는 과거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강요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교류를 어색해하고 싫어하는 찬우라는 친구는 마음의 문이 닫혀있기만 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고 실태이다.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바뀌길 바라는 것일까? 세상은 이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고 반도체 학과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국영수과에서 머물러 있다. 이 과목들이 안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왜 지금도 필수여야만 하는가? 아니게 될 수는 없는가?

 

슬라임은 바로 그런것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슬라임은 바로 그런 불편한 감정들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한다. 위에 나온 다양한 불합리에 의해서 발생되는 불편한 감정들을 먹으면서 점차 자라나게 되는데 중간중간 삽화가 되어 있는 만화에서 조금은 이해가 쉽다(내용 연계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삽화 내용은 뭔가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만약 슬라임 가게를 외계인이 만든 것이라면? 외계인이 사람의 불평, 불만들의 에너지를 먹고사는 것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연결이 참 자연스럽다.

 

우리 아이에게 읽혀주고 싶다.

지금 나는 우리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을까? 가끔 공부를 시키면서도 저렇게 싫다고 하는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초등 교육이 쉬우면서 편하게 설명을 한다고 해도 점차 어려워 지는데 이러한 큰 틀 자체가 변하지를 않으니 결국 반복과 암기로 승부를 하게 한다. 이해를 하기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세상은 사실 국영수과를 모두 잘하는 사람이 굳이 많이 필요 없는데 말이다. 아이가 읽는 것보다 내가 읽고 느낄 게 더 많았던 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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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21. 11. 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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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어본 적이 언제인가?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 동화 같은 이야기(?)도 일어나고 있고 동화의 소재로 책과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하면서 과연 '동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절대 명제가 깨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도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의미는 사실 동화가 어린이를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린 왕자를 기억하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용보다는 그 책에 있던 한 마디가 뇌리에 박혀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개인적으로 어린왕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이다. 사막이라는 곳의 척박함, 그리고 힘듦, 엄청난 일교차를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고 힘들 수 있는데 실제 사막으로 여행을 가면 왠지 모르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사막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렇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도 그 고통 속에서 사탕수수의 물 한 잔이나 우물을 발견하게 되면 인생에서 진귀한 것을 얻기 위한 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물은 바로 사막에서 더 빛난다. 폭포수와 세상 깨끗한 웅덩이 옆의 우물은 사실 장식에 불과하지만 사막에서의 우물은 바로 이렇게 찾고 싶은 욕망과 생각만 해도 행복한 느낌이 들게 한다.

 

옛날 여자친구가 사용하던 아이디 중 하나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제목이다 했는데 이게 동화였을 줄이야? 나비가 되기 전의 애벌레들의 애환(?), 경쟁(?)이라는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주제인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기가 막히게 표현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토록 고생해서 올라온 기둥이 수천 개의 기둥 중에 하나일 뿐이라니!'라는 내용을 보면 회사에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내 위치에서 높이 올라왔다고 생각을 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더니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에게 희망은 있는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야 한다는 부분은 결국 한 번은 변화를 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과연 그런 변화를 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틸다의 꼬마는 불의에 대한 항쟁이었을까?

마틸다는 천재이자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다.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이득에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신과 함께하는 하니 선생님을 위해 활용을 한다. 물론 이런 부분에 있어서 선악에 대한 구분을 짓자고 하면 마틸다가 선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어른들의 불합리에 대해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조그마한 반항이 아니라 큰 도전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누구나 초능력을 꿈꾸긴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보다는 그 초능력을 어떻게 활용을 할까, 그리고 약자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게 되는 내용이었다.

 

삶이 힘든가?

최근 삶이 팍팍해지고 모든 경쟁사회 위주로 돌아가게 되면서 인생 살기가 참 힘들어진 것 같다. 주변에서도 공황장애들과 같이 정신적인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쉬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삶은 누구나 힘든데 버틸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로 나뉘는 정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도 한 번 동화를 읽어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동화에서 나왔던 그 문구들이 나의 삶을 조금이나마 치유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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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