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3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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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사 시에 연수 자체가 없거나 하는 회사에서는 모르겠지만 일단 연수라는 것이 있다면 항상 나중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가 제일 좋았다."

나 역시 동일하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참 재미있던 기억들이 많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회사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를 때 어쩌면 조금은 순수한 시점에서(대졸자가 뭐 순수하겠냐만은...)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일단 어느정도 연봉도 비슷한 수준이고 말이지...) 친해지기가 꽤나 쉬웠다. 같은 조에 24명이었는데 이름 외우는데 2일이 안 걸렸던 것을 본다면(개인적으로 사람 이름을 정말 외우질 못한다... 머리가 나빠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임펙트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대기업들의 연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SVP(삼성그룹 입문 교육)에 2008년에 입문했다. 지금은 기수문화를 없앤다고 기수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사람 보면 몇 기냐고 먼저 물어볼 정도로 기수문화가 충만했다. 뭐, 신입사원들 끼리는 몇 차였는지 까지 묻는 곳이었으니 향후에는 그 폐해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업(안산 시내에서 카메라만 들고 영업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보험FC 아주머니께 정말 춤을 추면서 까지 해서 한 대를 팔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과 산행(M.A.T 였던 거 같은데 뭐에 약자였었는지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통칭 매스게임으로 일컫어 지는.... 명칭이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 어찌됐건 신나게 춤을 추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밤마다 12시까지 춤연습을 하고 잤는데 평생 이렇게 춤을 많이 춰 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다. 몸치였으니 시간 투자를 남보다 많이 해야하고 특히 몸이 거대하니 그거만큼 둔했다.ㅠ.ㅠ

 

당시에는 솔직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부분이 있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좋은 추억이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동기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도 그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말이지) 군대만큼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근데 뭐... 솔직히 여자들도 잘 버티고 하는지라 남자인 나로서는 육체적으로 죽도로 힘들었던 것은 아닌거 같다. 다만 잠이 많은 나에게 잠을 줄이고 뭔가를 하라고 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사실 제목에 적혀있던 입사 후 최고 행복했던 시간은 요 친구들이랑 SVP가 끝나고 서울 서대문 쪽의 레지던스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 방팅도 하고 생일케익으로 얼굴에 문대기도 하고 다양한 게임을 했었다(불과 1박 2일동안!) 술도 정말 그렇게 진탕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다들 그렇게 마시고도 다음날 멀쩡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던 것을 본다면 이제 사회인이 다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 교육기간 중에 느낀 것은 바로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구나."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아도 적어도 나보다 뛰어난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더라"

라는 사실이었다.

 

겸손

사실 이 단어는 그동안 나와는 관련이 없던 것 같다. 한 번도 겸손해 지려고 노력한 적이 없고 모두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SVP 종료 이후로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았고 그 중 하나인 나는 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떨어지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처음에는 무시했던 친구가 3개국어 능통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뭐 지금도 겸손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다른 사람을 볼 때 항상 장점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어쩌면 겸손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게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어찌됐건 연수는 끝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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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2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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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도 그날을 잊을수가 없긴하다. 내가 지원한 회사 중 유일하게 제대로 붙은 대기업이니 말이다. 사실 기대를 안했는데 합격을 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생쑈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제일 좋아하셨던 분은 누구보다 부모님이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상대적으로 계속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는 그닥 회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돈은 벌겠구나.... 정도의 생각?) 어머니께서는 정말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집안이 사기를 맞아 꽤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합격이라 돌파구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00년 대 후반~ 2010년 극초반까지 합격한 사람은 알꺼다. 주먹 불끈 쥔 아저씨의 모습을(합격자) 그 당시 사용하던 PC에 캡쳐해서 넣어놓았는데 망가져서 이제는 없고(아, 아쉽다~) 지금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혹시 어떻게 검색하면 나오는지 알면 가르쳐 주라, 사례하겠다...!) 뭐 어찌됐건, 그때는 그저 내 앞에는 꽃길만 가득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합격하고 나서 한 번 다시 보니 나의 직군이 있었다.

F직군??

근데, 내가 뭐로 지원했는지를 그때 알았다. F직군이 뭔가? Fuxx...도 아니고 말이지... 낌새가 좀 이상하긴 했는데 일단 대기업에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어딘가. 근데 당장 부모님과 여자친구 말고는 딱히 자랑할 상황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조선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이 흔들거려서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었고 같은 과에 있는 사람 중 삼성에 들어간 사람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없더라. 내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냥 학교당 배정받은 사람 중 우연히 내가 들어간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때는 그저 내가 잘난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분명이 비중이 가장 클 것 같은 면접에서 너무 당당하게 모른다고 했다. 지금이야 좀 튀는 사람도 뽑는다는 분위기이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분위기도 그리 안좋았던게 면접관들이 엄청 답답해 했다는 느낌이 쫘~악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뒷통수가 그리 따가울 줄 몰랐다만, 뭔가 실수를 해서 붙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용담으로 전해주기도 하지만 입사하고 2년 동안은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못했던 사실이다.

 

어찌됐건 5월에 발표는 났고 7월 7일까지는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평생 먹어도 모자를 술을 먹었던 기억만 있긴 하다만, 적어도 어딜가서 위축되고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고 인생에 있어서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기 전, 수능 끝나고 대학교 가기 전과 비교할 정도의 즐거움이 있었던 시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련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그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말 멀리 한 번 나가보던가, 아니면 회사라는 곳에 발목잡히면 절대 하지 못한 것들을 했었어야 했다(이건 나중에 따로 한 번 글을 써봐야 겠다)

 

이제 운명의 7월 7일(???) 입사 첫 날이다.

특별할 게 없는 하루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정말 재미있었던 시간, 그 때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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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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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도 이야기 했듯, 반도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이 갔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시련이 왔다. 내용은 Wafer에는 끝쪽에 Ingot ID라고 하여 Wafer의 No를 Labeling을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을지 묻는 토론 면접 부분이었다.

아뿔싸... 애초에 그게 뭔지도 모르고 Wafer라는 것은 그냥 둥근 실리콘 덩어리라고만 알고 있지, 내가 거기에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 알게 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을 무렵 자리가 한가운데 떡하니 있다는 사실을 조금 후에 알게 되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사회자 봐 줄 수 있을까요?"

 

희안했다. 다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듯 했고 그것이 있던 없던 '나는 어차피 할말이 많으니 상관없어 흐흥' 이런 분위기였다. 다들 그저 부러웠다. 그럼,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사회를 어떻게 봤더라...

손석희? 이거 뭐 이름만 알지 제대로 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럼 또 누가있나.. 여기서 유재석 처럼 재미있게 사회를 볼 것도 아니고...

 

 

<좀 도용했습니다. 손석희 사장님^^>

 

그런데 의외로 사회자의 역할이 내가 딱 맞았나보다. 단순히 의견 정리해서 중간중간 설명해 주고 내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당연히.. 모르니까 제시를 안하겠지...) 토론을 이끌어 가니 어느덧 15분이 훌쩍 넘었더라. 그래서 종료되었는데 의외의 반응

 

"사회자가 참 잘 본다."

 

오, 의외다. 사실 내 재능은 사회 보는 것에 있지 않을까? 라는 어이없는 생각과 함께 토론면접이 끝났고 인성면접장으로 이동했고 사실 인성면접에서는 키가 190cm이었던 관계로 주구장창 키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 왠지 인성면접은 그냥 면접하기가 귀찮아서 아무거나 물어보는 장소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앞에 있는 사람도 뒤에 있는 사람도 그냥 개인적인 질문만 하다가 끝난 것 같다.

 

자, 이제 오늘에 마지막 난관인 기술면접이 남았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남에게 설명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 회사를 10년 가까이 다녔음에도 자신있게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하는 가에 대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조금 어려움이 있다. 단편적으로 하는 일이야 어느 회사나 다 똑같을테고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물어볼텐데, 사실 Wafer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닌 Robot이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Wafer 만들어.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있다(그래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청소한다고 해도 믿지도 않고 말이지...)

어찌됐건, 주제를 주고 10분동안 생각한 다음 발표하는 것인데, 아마 100분을 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그냥 들어갔을 주제였다.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발전의 차이를 설명하라'

 

1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이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인거 같은데, 지금까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이유는 이렇다. 모르는 것은 사실인데 회사에서 당시에 추진하던 것이 태양열발전의 전지를 구상하고 있었던 듯 하다, TF까지 꾸려져서 진행을 한 것 같은데, 생뚱맞게 유가는 향후 몇 년 뒤부터는 쭉쭉 떨어져서 해당 발전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2차전지 발전과 LED의 대두가 진행되면서 다른 계열사로 이동이 되었고, 결국 태양광/열 발전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뭐, 간략하게 설명하면 빛과 열의 차이인데, 빛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것과 열에너지를 전기를 바꾸는 것이라고 보면된다(너무 간단한가?) 어찌됐건 당시에는 그것도 몰라서 그냥 무작정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솔직히 이 부분은 공부를 안해서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다음주에도 여기 면접이 계속 있는 것 같던데 다음주에 다시 와서 설명하면 안될까요? 어설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며, 놓치지 않을 인재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니 오글거리긴 한다. 거기다가 완전 미친놈 같다. 뭘 믿고 저런 헛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토론면접 때 한 번 충격이 와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했고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니 그냥 좀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뭐... 남들은 10분 이상 하던데 난 3분 만에 튀어나왔다.

 

"다른 회사 찾아보자"

 

라는 생각을 했지만 당장 남은 곳이 몇 개 없는 상황. 돌아오는 길에도 푹 잠을 잔 나로서는 이제 낭떠리지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일을 해주겠다는데 왜 받아주질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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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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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갖고 싶었던 직종은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하던 2007~2008년은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주변 부동산이 싹다 몰락하고 있는 상태였고 기업들은 부도가 나나 안나나 걱정하고 있던 시기라 전체적인 공채도 인원이 절반 이상 삭감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금융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만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삼성생명에서 인턴쉽을 했는데(나중에는 결국 없어진 듯 하지만 보험영업자를 키우려고 하는 인턴쉽이었다. 난 좋았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삼성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기도 했고 합숙이라는 것에 정말 많은 매력을 느끼는 시기였다(언제 여자들과 같이 합숙을 해보았겠나... 공대 테크트리가 다 그렇지 뭐...)

 

사실 그곳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장점만 보여줬으니 당연히 좋아보였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금융권 근처도 못가보고 광탈했다. 최종 합격한 곳이 전혀 없었으니 뭐..... 사실 우수한 학교의 공대생도 아니고 뭐하러 나를 뽑았겠냐라는 자기 위안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조금은 아이러니 했던 것이 생각보다 서류합격률은 높았다는 것이었다(이렇게 말해도 40개 중에 고작 7개 밖에 안되었었다^^;;) 그러던 와중 중견기업이었던 D사에 영업지원으로 합격을 하였고 2008년 4월 1일자로 발령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뭐에 씌었던 걸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사 쪽에 전화해서(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안간다고 했다. 사실 지금 보자면 거기라도 합격을 했던 것이 감지덕지 한 일인데 뭘 믿고 전화를 해서 안간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일단 지르고 나니 왠지 모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여자친구가 한 번도 없을 때는 여자들한테 말도 못 걸지만 한 번 사귀어 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괜한 자신감이 생겨서 여자들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나만 생기는 미친 버릇이었나...)

 

...........

그 이후로 정말 20여개 기업에서 '당신의 능력은 출중하나.... 어쩌고 저쩌고'. '귀하의 뛰어난 실력은 어쩌고 저쩌고...' 금융권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대라고 생산지원이나 엔지니어링으로도 지원을 했는데 역시나 무참하게 밟혔다. 한 달정도 진짜 집에 적막이 흘렀다고 했었다(부모님의 나중에 이야기에 따르자면 말이지...) 수능을 망치고 와도 10분 울고 끝나고 넘어갔었는데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다. 내가 왜 포기를 했는가에 대해서 많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뱉은 말들이 많아서 그 많던 자신감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흔히 취업생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삼성그룹 공채에서 서류에서 떨어지면 그냥 다른 대기업은 포기하라고... 왜냐하면 그냥 다 붙여줘서 그렇다.(학점 3.0 이상에 영어시험도 거의 자격수준만 넘으면 OK) 지금은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당시에는 SSAT(싸트) 라고 했었다. 왠 수능 다시 공부하는 느낌으로 공부를 했는데 내가 왜 합격을 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 잘 본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통과를 했으니 잘봤다고 믿겠다^^;

 

20개 떨어지고 적성시험 합격한 유일한 회사가 사진의 삼성전자이다. 사실 워낙 뽑는 인원이 많아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대생의 마지막 보루(LG 디스플레이와 더불어...) 라고 했던 곳인데 당시 반도체 쪽이 완전 망할 분위기여서 인원이 대폭감소되었었다. 기억으로는 나 때 그룹 전체 공체가 2000명 대 였으니 지금 만 명 넘게 뽑는 거에 비해서는 정말 적은 숫자였다. 더군다나 내가 지원한 회사는 당장 말할 분위기라고 이야기 하던 삼성반도체 였다. 사실... 적성검사 합격 이후에 갑자기 반도체를 보기 시작했는데, 일단 반도체라는 정의만 알고 있었지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에 가까웠었다. 철강재료/비철금속재료 등 금속 관련 공부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애초에 이걸 아는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20개 탈락 이후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으며 나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어차피 남은 대기업 공채들은 대부분 탈락을 해서 몇 개 남지도 않았었는데 면접까지 갔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면접이 3:1~2:1 수준이 된다고 하니 정말 이번에는 희망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양재역 주차장에서 기흥사업장으로 갔었는데 가는 길에도 공부를 해보려고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그냥 버스에서 기절했다. 난 정말로 긴장감이 없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다. 주변에 정장입었던 다른 애들은 정말 차에서 조용히 중얼중얼 대던데 말이지... 어찌됐건 기흥사업장에 들어와서 간 떨리는 면접은 시작되었고 반도체라는 것에 대해서 2주 공부하고 갔던 나에게는 정말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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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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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어쩌면 너무 평범해서 글을 쓰기조차 애매할 정도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독서라고 할 수 있는데(취미가 너무 재미없다고 할 수 있지만 정말이다. 독서하는 시간이 나의 행복 중 하나다) 여기 블로그에다가 서평을 적어 놓은 것처럼 정말 남들만큼(아니, 남들 이상) 책을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다만... 책이 너무 한 쪽 장르로 쏠려있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집중을 하다보니 너무 경제/경영에 관련된 책만 읽은 감이 있는데, 뭐 어떤가? 나름대로 그 쪽 분야에 있어서는 정말 '이론만' 빠삭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도 만족을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마케팅이나 보험/증권/은행 등, 정말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 많지만 의외로 전혀 전문적이지 않고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글을 남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재테크 분야에 있어서는 딱히 학벌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일기를 쓰듯 계속 써 내려가면서 공감을 얻게 되는 책들도 있었는데, 어딜 찾아봐도 공과 대학을 나와서 엔지니어로서의 모습을 글로 나타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는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공돌이들이 더 많은데! 왜 하나도 없을까? 그들이 글을 전혀 쓰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어쩌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틈새시장(?) 이라고나 할까?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좀 더 준비를 했거나 다른 것을 해 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아니면 입사 후에 그곳의 모습에 대해서 나타낸 책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생각을 해보면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도 다들 공대를 그리 높이 쳐주지 않았다. 지금이야 취업 때문에 다들 어쩔 수 없이 공대를 가라고 하지만 손에 기름때 묻히고 싶은 사람이 최근에는 어디있겠으며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 금융권이나 공무원/공기업이니 공장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인생에 있어 낙오자라는 느낌이 들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서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회사의 공장을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변경을 해보고(이미 이쯤 나오면 내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수도 있다) 여러가지 공장의 티를 벗기 위해서 노력한 부분이 있지만(이건 내가 나중에 쓰는 글에 담길 내용이다) 이미지 개선에는 그리 많은 도움은 되지 않았다. 망할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때문에 그런가... 아니다 지금은 사상공농이라고 보는게 날듯 싶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책을 써보고자 하는 바램에서 이 블로그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솔직히 여기 있는 글들을 누가 읽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루에 100명도 보지 않는 이 블로그에서 과연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읽을까? 라고 생각은 하지만 뭐 어떤가? 내 개인적인 꿈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나는 정말 이것을 한데 묶어서 책으로 발간을 할 것이고 또 그에 따라 진짜 책을 팔아볼 생각이 있다. 언제 한 번 이렇게 꿈을 현실로 이뤄볼 생각을 해 볼 것이고 도전해 볼 것인가? 어설퍼도 좋다, 이상해도 좋다. 일단 와이프가 한 권 사준다고 했고 부모님이나 장모님이 사주신다고 했으니 적어도 5권은 확보된 것 아닐까? 그런데 차마 친구들한테는 팔지 못하겠다는 점이 단점이긴 하다(이미 대부분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다른 작가들처럼 임팩트 있고 불굴의 의지로 뭐를 이루었다라는 내용은 없다. 인생이 거의 둥글둥글하게 살아왔으니 그만큼 글도 밍숭맹숭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는 확실하다. 그런 임팩트있는 것은 보기에는 정말 감동적이고 멋있을 수 있으나 그게 자신이 아니다. 자신이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것을 투자하고 포기해야 할 부분은 포기해야 하는데 인생을 살다보니 내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냥 어느정도 평범하고 엔지니어라는 직종을 선택하면서 얻게되는 장점과 잃게되는 단점에 대해서 하나씩 적어 내려가 보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의 약속이니 이게 누군가에게 읽혀지던 아니던 항상 써 내려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200화가 되면 내 스스로 책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의 나의 꿈이다(생각해 보니 3년 뒤에나 발간되겠네.. 허어...) 힘내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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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5. 1. 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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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그냥 '친구'로 검색했는데 나와서 홀랑.. 하... 아(?) 사진 감사합니다 네이버님...응(??))

거의 1년 이상 시간이 지나서 적어 봅니다. 사실 이 블로그가 누가 열심히 쳐다보는 블로그도 아닐 뿐더러 말 그대로 제 마음대로 쓰는 블로그 인지라, 이렇게 적어보긴 합니다만 꾸준히 매일 50명 이상이 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뭐, 그냥 왔다가 Back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요.

 

이제 2015년이지요? 2014년 일평생 가장 힘들고 어렵고 복잡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수 있는 돈을 지불했고...(집 매매 때문에...) 그 덕에 은행과 카드사에 그렇게 많은 연락을 취해 본 것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돈 때문에 친구들한테도 빌려달라는 연락을 해 본 것이겠지요. 사실 어릴 적 다른 사람에게 배웠을 때는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본인이 가능한 만큼 빌려주고 차라리 잊어버려라' 라고 배웠긴 했습니다만, 제가 막상 그 상황이 오게되니 정말 당황스럽고 어색하더라구요. 왠지 모르게 전화를 해서 요구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만 이 기회를 빌어 어쩌면 나에게 남아있는 믿음이라고나 할까요? 이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솔직히 말하자면, 이 내용은 어쩌면 자신과 친구와의 관계를 멀게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 본다면 어쩌면 진짜 마지막까지 나에게 남을 친구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요청해 봅시다.

꼭 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꿈을 갖이 꾸거나, 아니면 시간을 요청하든지, 여러가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평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급한 상황에 이르면 흔히 본성이나 숨겨져 있던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어떤 반응이든 나타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여러 부류가 있었는데, 하나씩 소개드리자면

1. 흔쾌히 빌려준 친구

 이 친구는 돈이 많거나 혹은 나에 대한 믿음이 어느정도 갖춰진 친구 입니다. 사실 돈이 있어도 빌려주기 싫은 경우가 많이 있을텐데, 흔쾌히 빌려주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빌려주진 않았으나 걱정을 해 준 친구

 이런 친구들이 어쩌면 대부분 현실적입니다. 빌려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고민을 같이 공유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저는 감사했습니다. 조금 민망한 요청이었지만 결국 다시 만나도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것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친구관계는 기존과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3. 그냥 핑계만 대고 빌려주지 않은 친구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했던 케이스였습니다만, 오랫만에 만났던 친구였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런 케이스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2개월에 한 번씩은 보던 친구들이 아내 핑계, 여러 핑계만 대고 왜 돈을 빌리려고 했을까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보지 않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에 친구 사이가 멀어지진 않았습니다만, 앞으로 과연 가까워질 수는 있을까 조금 의문이 가던 친구였습니다.

4. 빌려주지 않고 그 이후 연락이 끊긴 친구

 개인적으로 이런 친구는 없었습니다만, 반대로 제 돈을 빌려가고 그 이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긴했습니다.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돈을 갚으라고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받을 마음도 없는데 연락을 끊을 정도로 나를 믿지 않는가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보았었습니다. 조금 슬프네요.

 

 

뭐, 돈 빌리는 입장에서 뭐 저리 따지고 드는지 물어보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30대부터는 돈 문제가 서서히 개입되는 시기입니다. 친구든 동업자든지 간에 일정 이상의 신용이 없다면 앞으로 일평생 한 번의 고비는 겪게 될 수 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신용을 쌓아 보십시오. 적어도 나를 진짜로 믿는 친구가 한 명은 있어야 세상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친구가 없다구요? 그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봅시다. 돈을 빌려주는 친구가 꼭 좋은 친구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말을 듣고 돈이 없다면 다른 것으로라도 도와 줄 수 있는 친구가(나 역시 똑같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금전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적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지?' 라는 것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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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3. 8. 2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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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있던 전형 중, 봉사시간을 100시간 이상 채우면 되는 전형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3년동안 100시간 채우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은 됩니다만,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입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채우라고 하는 30시간 때문에 나의 황금같은 주말을 날려 먹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기회가 닿아서 친구들과 꽃동네에 가서 1박 2일동안 봉사활동만 하던 날도 있었으니 말이지요. 당시에는 왜 그리 이런 사람들이 어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 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구요.

 

두 번째로 봉사활동을 제시한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이기심이 생기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 입니다. 20대 초반에는 그나마 남아있던 양심들이 점차 사라져 간다고 할까요? 소위 속세에 찌든다는 이야기를 점점 경험하게 됩니다. 학교 동기들도 결국은 경쟁자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고, 더군다나 최근 결혼도 직장도 포기한 세대가 되어버린 2030세대들에게는 점점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든 사용한다' 라는 것이 만연해 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시간 때우기' 밖에 될 수 없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봉사활동을 해 왔던 사람들이 나중에도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그 다음에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목표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사람 욕심은 한 없이 계속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최근에 회사에서 분교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이기심이 많이 늘어난 지라 '더워죽겠는데 왠 봉사활동이여' 라는 생각을 안고 갔었는데요. 뭐, 실제로 학교의 아이들과는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지만, 안에를 청소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청소를 하지 않고 외부 사람이나 어머니들이 청소를 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할 때는 좀 짜증도 나고 했는데 다 하고 나서 보니 내가 해 놓은 부분이 굉장히 깨끗해 보여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봉사활동을 해 봤지만 억지로 한 경우가 많고 이렇게 주도적으로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매주 봉사활동을 한다던가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인연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내서 봉사활동을 다녀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후련해 진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주면서 대가를 받습니다. 그것이 기업이 돌아갈 수 있는 하나의 원리인데요.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 봉사활동이 주 업무보다 더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만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어쩌면 그저 마음의 평화나 어려운 사람의 미소가 대가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이건 30대가 아닌 20대가 되기 전부터 하나의 습관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부모님의 생각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한 달에 하루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적 1점이 더 오르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지요.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귀가 좀 솔깃해 지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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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3. 8. 1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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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지금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가장 존경(?) 받는 친구를 찾는다면 단연코 운동 잘하는 친구입니다. 특히 체육시간과 방과 후, 혹은 점심 시간에 가장 우대 받는 친구라고 할 수 있지요. 고등학교 말미에는 PC방 유행으로 인해 Game 잘 하는 친구가 우대받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남자 아이들의 우상은 바로 운동 잘하는 친구입니다.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운동을 잘하거나 어릴 적부터 부모님 버프로 인해 많은 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면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간 것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한 반에 절반 이상은 솔직히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중 약 1/4는 체육시간에 운동이라는 것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많구요. 더군다나 대학교 때문에 경쟁에 빠져 있는 그 시기에 운동하라고 권유하는 부모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은 그저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 경우가 대다수 입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신체적으로 체력이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면 공부도 하기 힘든 경우가 많지요. 최근에는 음료의 힘(레드불??)을 빌려 잠을 극복하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그저 많이 앉아있는 것이 성적 향상에 지름길은 아니니까요. 한국도 미국과 같이 스포츠를 장려하면서 대학 전형에 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의 예를 들자면, 운동하기 최적의 시기는 바로 중3,고1 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기 교육으로 인해 이 시기에도 미친듯이 공부만 하는 아이가 있긴 했으나 주제가 '30대까지 꼭 해봐야 하는 것' 임을 생각해 봤을 때 요 시기가 본인이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어떤 운동에 소질이 있는지가 가장 확연히 드러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본인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요 시기를 지나버리면 운동을 하는 회수가 확 줄어버리기 때문에 이 때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한 번씩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운동은 '농구' 입니다만, 부모님 버프로 인해 축복받은 키(190cm)로 인해 사실 어렵지 않게 농구의 세계로 빠져든 경우입니다. 하지만 같이 하는 친구 중 170cm 대의 친구에게도 핀잔을 받을 정도로 시작은 너무나 못했고 소위 '키만 큰 막대기' 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움직임이 뻣뻣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눈은 공을 보고 있는데 발은 움직이지 않는 그런 현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같이 시작하고 비슷했던 친구들과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의욕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지지 않으려는 욕심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새벽에 등교하고 농구연습,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농구, 점심시간에 농구, 하교 후 농구하고 학원, 학원 갔다가 야간에 불켜진 대학교가서 농구하고 집으로 귀가... 라는 생활을 한 3개월 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더럽게 못하는 애들에 밤마다 좋다고 뛰어다닌 결과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하다보니 반 대항 농구대회 같은 것은 항상 대표로 뽑히더라구요. 하도 연습했더니 실전이나 연습이나 항상 실력이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긴 경우보다 진 경우가 더 많기도 했지만 뭐 어떻습니까? 적어도 농구라는 종목에 있어서는 키를 제외하고도 내가 떠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는데 말이지요.

 

대학교 때도 출전에서 사회체육과를 제외한 전 팀에게 이긴 적이 있습니다.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거기다가 크게 도움이 되는 편이 아니기도 했었지만서도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워낙 숫기가 없어 선배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제가 자연스레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지요. 지금의 여자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 시절에는 남자들은 운동으로 친해지기가 가장 쉬운 것 같습니다. 적어도 2~3 게임정도 뛰고 나면 다음에는 나도 모르게 먼저 인사하는 경우가 많고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지요. 최근에는 주변에서 야구를 하는 것을 본다면 저도 불끈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주말마다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농구같이 2명만 모여도 가능한 경기를 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종목을 좋아하든 간에 구기 종목 하나쯤은 정말 남보다 1%정도 잘할 수 있다는 종목을 하나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과 부가적으로 오는 인맥관계들이 절대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주제를 '운동 하나 잘하자' 가 아니라 '이 운동하면 내가 떠오를껄?' 이라는 주제로 잡아봤습니다. 엄청 잘할 필요 없고(사실 그렇게 하면 안 껴주는 경우도 생깁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종목을 하나 마련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지금같이 푹푹찌는 더위에 하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일단 사람이 살아야 되니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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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