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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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친듯이 나쁜 점만 강조해 왔다면 장점도 분명 있으니까 이런 직군이 유지되니 한 번 장점에 대해서 진득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1. 갈구는 사람은 넘쳐난다. 근데 생각보다 용서도 의외로 잘된다.

 

엄청나게 뭐라는 사람은 넘친다. 그런데 설비 엔지니어서 사고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 아무리 커도 10 Lot 이내다. 다 때려부수던 뭘하던 간에 설비가 고장나서 문제이지 사고 자체가 그 라인의 그룹장이나 직장의 존재 여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경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공정엔지니어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크게 나지 않는 반면에 실수가 하나 생기면 정말 '대박' 사건이 발생되게 된다. 10년 이상 보면서 그런 사고를 친 사람이 롱런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사고 보고서도 정말 징그럽게 써야 하고 끌려다니는 것도 어마어마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공정 엔지니어를 설비적으로 '보좌' 하기 위해서 회의를 들어간 적이 있는데 이게 과연 2010년대의 회의 모습일까 싶을 정도였다. 설비 엔지니어는 그정도는 아니니 안심하자.....(근데 어차피 욕먹고 열받는 것 똑같다는 느낌이다)

 

2. 화려한 페이퍼 웍의 기대를 애초에 하질 않는다.

 

이 직군의 소위 고참들의 특징들이 있다. 페이퍼 웍에 상대적으로 굉장히 약하다는 것인데 특히 '장' 급 타이틀을 달고 못하는 사람은 그동안 누군가가 대신 작성을 해줬기 때문이고 오직 입으로만 설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거의 확신한다) 항상 PC 앞에 붙어 있는 공정이나 제조 쪽과는 다르게 설비를 만지는 일이 잦은 그들에게 PPT나 엑셀은 선택받은 소수의 인재들에게 몰빵이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본부 쪽에는 오직 보고서만 담당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전체적으로 Low Quality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자주 하지 않으니) 그래서 상대적으로는 큰 Quality를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팀장이나 그룹장이 그냥 간결한 것을 좋아하거나 구두 보고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최고의 상황이긴 한데, 이 역시 나중에 이르러 그들과의 차이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어차피 10년쯤 넘어가면 슬슬 페이퍼 웍에 집중하게 되는 시점이 오는데 그 때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스스로 잘 기회를 갖고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도태된다. 평생 닦고 조이고 기름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3. 돈 좀 만져본다.

 

돈을 좀 만진다는 의미는 반대로 말하자면 건강을 잃어버린다는 말과 일맥상통이다. 교대 근무하면 수당도 붙고 OT를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수당들은 내 자산을 튼튼하게 하나 내 몸도 같이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근무가 계속 바뀌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는다면 정말 쥐약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불만 사항을 뒤로 젖혀두고도 보자면 돈은 확실히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맞다. 나는 결혼하고 한 번도 맞벌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는데 모아온 돈은 맞벌이보다 어느정도는 비슷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만큼 착착 쌓이는 것이 많기도 하고 월급날 얼마 나올지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지샐 때가 있다. 적어도 삼성전자 내에서는 어느 직군보다 돈을 많이 만져볼 기회는 있다. (나름 보너스도 팡팡 터지는 편이니 얼마나 좋은가?)

 

4. 개인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부서를 파견와서 항상 고민이 되는 것은 새로운 목표 설정 부분이다. 각 부서별로 임원의 MBO 목표와 개인의 KPI를 작성하는 것인데 솔직히 설비 엔지니어는 적어도 10년간은 그냥 부서 목표만 따라가면 되고 개인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인재 육성? 외국어? 다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어느 사람이 와도 그냥 고과는 돌려먹기였다. 항상 그런 것에 분노를 느끼고 어필을 한 적도 많이 있지만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고과 못받을 거 같으면 아무것도 안하는게 상책이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평가라는 시스템은 사실 이제 미국 기업에서는 14% 정도만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이미 90년대 말에 들어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 코웍을 해야 하는 부서원과 경쟁을 하라고 하는 이 희안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그냥 개인 목표는 개나 줘버리자. 사실 편하다. 목표는 Ctrl+c/Ctrl+v로 하고 심지어 점만 찍어놔도 아무도 안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그냥 신경 쓰지 말자(물론 말로는 다 적으라고 하는데 이미 고과 줄 사람이 정해져 있다. 뭐하러 하나?)

 

적으면서도 장점이 대부분 단점 같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왜 이렇게 직군에 애정이 없냐고 물어본다면 주변에 이 직군에 애정이 있는 사람을 정말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적어본다는 것이다. 10화 까지 쓰면서(2년간...) 단 한 명도 '왜 너만 그렇게 생각하니? 실제로 우리 직군은 나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우울하다는 의미이다. 에휴.... 다음화에는 마에스트로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얼마 전 회사 블라인드에도 올라올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도 한 번 짚어보면서 생각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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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9. 10. 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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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건방져진....응?)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분명 대졸 사원을 뽑을 때 '설비/공정 엔지니어'라는 별칭을 주었다. 그래서 왔는데 실제로 보니 엔지니어 직군은 공정만이다. 설비 직군의 이름은 일반 마케팅/인사/영업 등과 같은 일반 직군 명칭이다.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의아하면서도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뭐 그거야 회사 맘이니 내가 가서 '왜 그래요?' 라고 물어봤자 답을 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엔지니어라고 뽑아놓고 실제로 하는 업무는 엔지니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진짜다.

 

예전 군대에서 상병 때 들어온 후임이 하나 있었다. 이 후임은 카이스트를 다니다 왔는데 개인적으로 학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인정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솔직히 sky 대학 나온 친구들이 뭘 해도 더 잘하긴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인정을 해 주고 그런가보다(뭐, 조국 딸은 예외로 치자) 그런데 이 친구에게 항상 걸레를 빨아오라고 시키면 걸리는 시간이 가지각색이었다. 성격이 급하긴 하지만 군대에서는 정말 느긋하고 여유롭다고 소문난 나 인지라 그 행동을 유심히 쳐다 봤는데 나중에 알게된 사람을 걸레를 가로로 접어서도 해보고 세로로 접어서도 해보고 가는 루트를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갈 수 있나 기웃기웃 거리기도 하고.. 뭐 나쁜 마음으로 보자면 거의 관심 사병 수준의 일을 하고 있더라. 그런데 그 친구랑 근무를 설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군대가 왜 힘든지 아십니까?"

힘들다. 힘든데 왜 힘든지 고민을 안해봤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매번 똑같은 일 똑같은 생각만 하니까 뭘 해도 힘든 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다. 그런데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속 루틴한 업무라고 하면 힘들다라는 사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런데 어차피 군대야 2년만 버티면 되지만(물론 더 했다....ㅠ) 회사에 와서 2~3년 Shift 근무를 서면서 든 생각이 딱 이거였다.

 

우리는 엔지니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 망가지면 교체, 안되어도 교체, 문제 있어도 교체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고 단순 교체공이라는 의미다. 특히 반도체가 점차 활황이 되면서 회사에 돈이 남아 도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무조건 새 것을 구매해와서 교체만 한다. 솔직히 이제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후배들한테도 미안함을 느낀다. 내가 업무 지시를 하는 것에 99.9%는 엔지니어라는 명칭과 전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문제를 파악하고 망가진 것을 교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 설명서만 있으면(이 곳에서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우고 있지만) 초등학생도 할 수 있다. 그래, 그래서 나쁘게 보자면 그전까지 고졸 사원으로도 충분히 돌아갔다. 그래서 그 분들이 고위 직급에 앉아서 동일한 업무를 또 지시한다. 대졸이라고 다를게 무엇일까? 어차피 그 일 똑같이 시키면 답이 똑같이 나오는데 마치 우리는 항상 1+1=2라는 것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그 답에 맞는 행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 발자국 뒤의 부서로 파견을 와서 신입사원을 대하다 보니 나 때랑 똑같다. 그들 역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대부분 마음 속에 '퇴사' 라는 준비를 하고 있고 그것이 귀찮은 친구는 이 생활에 젖어들고 있고...

 

결국 이런 엔지니어링 활동은 모두 업체 엔지니어한테 등 떠밀듯 주고 있다. 이제는 솔직히 말할 수 있다. 내가 협력사 사장이라면 삼성의 설비 엔지니어는 절대 뽑지 않는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단순 교체는 1~2년만 가르쳐도 충분하다. 이것은 비단 개개인의 멍청해짐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도 능동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어질 뿐더러 이 직군의 미래도 어둡다는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소위 회사뒷다마 까는 앱으로 유명한 블라인드에서도 'F직군은 먼저 탈출하는 것이 지능순' 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슬프지만 10년 이상 지나고 보는 해당 직군의 모습은 사실이다(뭐 이렇게 적으면 회사에서 날 죽일려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설마..ㅋㅋ) 이렇게 비난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직군이 좀 더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의미는 아닐까? 점점 미세화가 되면서 불량에 대한 부분에서도 해결 방안이 다르게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구 사원이나 신입 사원이나 똑같이 머리가 굳고 있다.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단 생산에 치중된 업을 바꿔야 한다. 아니면 자유롭게 엔지니어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던지 말이다. 모두 돈 때문에 문제라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 지금 설비 엔지니어라는 직군은 점점 침몰되고 있다. 언젠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런 직군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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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9. 9. 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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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에 언급했던 교대근무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맞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눈에 보일정도로 황홀(?)했지만 새벽까지 계속 근무를 하고 거기다가 24시간 시시때떄로 연락이 오는 것 때문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와이프도 굉장히 불만이 많았었다. 근무도 짜증나는데 왜 자꾸 새벽에도 전화를 하는 것이냐라고 물어본다면 나도 그 새벽에 가끔은 전화를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더라.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내가 제대로 마무리를 못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어서 화를 낸 적도 많이 있던 것 같다. 당장 나에게 전화해서 뭘 해달라고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었을 때는 정말 매몰차게 소리지르고 전화를 끊었던 적도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들도 정말 답이 없어서 전화를 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어찌됐건 분명 입사할 때는 3~4년 정도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교대근무의 모습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동일한 라인에서 계속 있다보니 사람은 적체되어 있는데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상태로 계속 유지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3~4년이 아니라 5년이 지나도 계속 교대근무를 돌아야 하는데 이대로는 절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사라던지 홍보팀 등에서 하는 각종 참여를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글쓰는 것과 독서를 주무기로 진행을 해 보았으나 다른 부서로 가기에는 능력도 부족했고 현 부서에서 썩 좋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단순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인사팀 사람들과 조금 더 안면이 트인정도? 그리고 강남 서초사옥을 가끔 가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평생 가보지 못할 것 같았는데 가 봤으니 이 또한 만족스럽지 않은가?

 

아무튼 생각했던 3년이 지나가고 4년차가 되었을 때 위의 발버둥도 어느정도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그 때에! 바로 기회가 생겼다. 분명 OFFICE에서만 가능한 업무지만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설비 Set-up 업무에 공석이 생긴 것이다. 사실 기존에 다른 인원이 하고 있다가 퇴사 진행으로 인해 공석이 생긴 부분이었는데 지원자도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 뭐랄까 군대문화의 특징이 항상 서열 순서대로 눈치를 보고 내 차례가 오면 자연스럽게 한다는 그런 문화가 있었는데 난 그런거 필요없었다.(아 물론 얼추 내 차례가 오긴 왔었다) 그래서 일단 무조건 지원했고 자연스럽게 업무를 받아서 교대 근무에서 탈출하는 기회가 왔다. 지금 입사를 하는 친구들은 신규라인에 가면 거의 반드시 Set-up 업무를 하게 될텐데 바꿔 말하자면 해당 업무는 향후에도 언제든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다. 미리 배워두면 좋을수도 있고 신규 라인보다는 그래도 기존 라인에서 배우는 것이 차근차근 배우기는 더 좋다. 실제로 신규 라인에서 배우면 소위 '뻘짓' 만 신나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업무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되니(기본적으로 이걸 내가 왜 하는가? 는 알아야 하더라도 억울하지라도 않지...) 내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으로 온다면 신규 라인 보다는 기존 라인으로 가서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어찌됐건 3.5년 정도를 교대근무를 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교대 근무는 거의 하지 않았다. 주말에 가끔씩 Day 근무나 Swing 근무만 도와주었고 이후로는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는데 초기 1년 정도는 단순히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감동에 그저 좋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아니었었다. 부서에는 교대근무에서 OFFICE 근무로 내려갔다가 다시 거꾸로 교대근무로 전환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교대 근무의 경우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해당 근무 시간에 발생된 것이 완전히 종료되지 않더라도 다음 근무자에게 상황 설명 후 연계를 하면 이어서 업무가 진행된다. 다르게 보자면 내 업무나 아닌 '우리 업무' 라는 의미이다. 이것의 장점은 '우리' 가 다같이 잘하면 빠르게 업무를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내 업무' 가 아니기 때문에 성과를 내는 것도 반드시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기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어쩌면 교대 근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본다.

 

업무 자체를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면 엄청나게 말이 길어지긴 하겠지만 일단 위에 적었던 현재의 신입사원 보다는 훨씬 빠르게 OFFICE 근무로 내려왔다(올라갔다고 해야 하나?) 사실 다른 회사였다면 누구나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겠지만 (심지어 제조센터가 아닌 다른 곳이었더라도) 그런 생활을 몇 년만에 해보니 그저 즐겁고 편하기만 했다. 그런 삶이 조금 익숙해질 때쯤 서서히 업무 난이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러 유관부서와 부딪히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단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요 시점쯤 되면 퇴사율이 엄청나게 높은 설비 엔지니어 직군들도 대부분 퇴사를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버티기 시작하는 상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몸은 편해지기 시작했고 업무에 깊이가 조금은 생기기 시작했으며 다른 라인을 이동함에 있어서도 본인의 능력이 어느정도 발휘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좋은 면만을 보자면 그렇지만 다르게 보자면 업무 전환이 슬슬 어려워 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게 그 삶이 점차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은 곳 어디에선 가는 아직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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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9. 6. 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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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실제 연구/개발 쪽도 간간히 교대근무를 돈다. 하지만 개별 라인의 설비/공정 엔지니어는 거의 초반에는 교대근무를 100%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1~2년 차의 친구들은 교대근무를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절대 아니었다. 물론 초반에는 남들 퇴근할 때 출근하고(이건 정말 완전 슬프고) 출근할 때 퇴근하는(오우 나이스)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이 있고, OFFICE 근무자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차라리 SWING이나 G/Y 근무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막상 SWING 근무를 서게 되면 잠은 많이 자서 좋은데 결국은 22시가 넘어가 버리니 술마시고 노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고, G/Y 근무의 경우 정말 뭐랄까... 그냥 잠자는거 말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 분명 똑같이 8시간을 자도 너무 졸려고 피곤하고 뭐 그렇다. 더군다나 초년병 때는 몰래 잠자기도 좀 애매할 뿐더러 낮에는 숙면을 취할 수 없어 너무 힘든 상태가 되어 버린다. 왜 군대서도 당직 근무 다음에는 그냥 쭉 오침을 하지 않던가? 다음날 생활 패턴이 깨진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이긴 하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DAY / SWING / G/Y 근무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근무형태 근무시간
DAY Daytime (아침이겠죠?) 06:00~14:00
SWING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 14:00~22:00
G/Y Grave Yard(묘지기), 중세 유럽에는 야간에 묘를
파헤치는 경우가 많아서 묘지기를 세웠는데 이 시간대를 의미
22:00~06:00

어찌됐건 이 8시간 안에 식사 시간도 포함되어 있어서 어쩌면 9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8시간 근무+1시간 식사시간) 일단 OFFICE 근무자들 보다는 근무 시간이 확실히 적긴 하다. 그런데 어차피 다음 근무자에게 Inform을 남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30분씩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는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차피 일하는 시간은 동일하다. 거기다가 생활패턴도 적응하는데 2~3일 정도 소요되는(그나마 이것도 20대나 가능하더라) 것을 감안한다면 나중에 나이먹어서 까지 하기 정말 힘든 패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의 노예(야간수당+교대수당)가 되기 시작하면 50~60만원에 눈이 어두워져 G/Y 근무가 필요하다고 가끔씩 어필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는 사원들이 있으니 이런 근무 형태가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사실 예전에 IMP 부서에서 '무인 G/Y' 라는 것을 선보인 적이 있다. 야간에 근무자가 전혀 없도록 하는 방식이었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냥 망했다. 설비가 DOWN 되어 있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몇몇 임원들이 이런 시도 자체를 매우 안 좋게 생각을 했다(물론 당시 부서에서는 그런 이유로 끝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야간에 설비가 DOWN되었을 테고 그것 때문에 우왕좌왕 하다가 넘어가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추측이다... 좀 DOWN되면 오전에 와서 고치면 되지 뭐가 그렇게 급한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타 부서도 시도하려고 했으나 바로 접고 계속 동일한 패턴으로 업무가 진행이 되었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 혁신이라는 것이 나오기가 무척 어렵긴 할텐데, 교대 근무 생활 자체는 개인적으로는 악몽에 가까웠다. 몸도 망가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정신력으로 버티면 되지 않겠냐고? 8시간 근무라고 해서 8시간만 딱 근무하는 경우도 거의 없을 뿐더러 초기부터 Shift Leader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래저래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시간도 굉장히 많다. 지금도 열심히 근무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 추천하지 않을 그런 근무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이 근무를 탈출해야겠다... 라는 결론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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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4. 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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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좀 구조가 변경이 되긴 했지만 당시에 구조를 살펴보자면 고졸 사원은 F1, 전문대졸 사원은 F2, 그리고 대졸 사원은 F3로 시작을 한다. 사실 F1에서 F3까지 진급하는 것은 6년이면 되나, 이 때 소위 말하는 F3고시라고 하여 F2->3 직급으로 전환되는 시점이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얼마나 심하면 극단적으로 15년 넘게 F2에서 멈춰있는 사원도 있을 정도이니(사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있으니 그렇다고 생각을 해야겠다) 대졸로 들어온 F3 직급 인원이랑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지도선배를 잘(?) 만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주변 선배들 중 분명히 적대감이 느껴지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있었고 일단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이 나보다 직급이 아래인 상태로 시작을 하였으니 나역시 그들에게 배움을 청할 때는 어려움이 많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보다 나이는 많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질 그 이질감이란, 정말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하니 그들에게 배워야 겠고 그런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꽤나 많은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바로 이거였다.

 

"대졸 사원이라 다를 줄 알았는데 고졸이랑 똑같네"

 

사실 짚고 넘어가자면 웃긴 부분이 있다. 아무도 안가르쳐 줬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사실 여기서 가장 웃긴 부분은 바로 이거다. 한국 사회가 그 썩을 군대라는 것 때문에 아래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하고 뭐든 알아서 해야 하는 이상한 문화다. 제대로 교육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시스템이 정말 정상적인지는 많은 의문이 있다. 지금에서 들어오는 친구들에게는 내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으나 적어도 그들이 모른다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타박하지 않는다. 그거 한 두개 지식이 더 있다고 해서 더 잘난 사람도 아니고 또 그것을 모른다고 해서 그것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초반에 몇몇 인원과는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있었고 솔직히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소리도 지르고 화도 꽤나 많이 냈던 것 같다. 사실 덩치도 엄청 크고 키도 커서 상대방이 많이 당황스러웠다고 후일담도 이야기 했지만 어쨌거나 건방진 후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던 것 같다. 사실 이 상황에서 내가 타계한 방법은 일을 엄청나게 잘한다기 보다는 반복업무를 최대한 배제하고 설비 고장의 '원인' 을 찾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어차피 5년 넘게 동일한 장비를 다뤄본 사람들과 동일 선상에서 노력을 해 봤자 이길 수 없는 경기이고 이왕 쓰레기같다고 낙인 찍힌 거 이렇게 건방진 이미지로 끝까지 가서 나는 좀 즐겁고 편한 회사 생활을 하려고 했다.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그 덕에 3년 간은 정말 죽도록 힘들었고, 그 힘든 파고를 넘어서 보니 그 때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어쩌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렀고, 사람들이 몸으로 때우는 업무들에서 많은 부분 배제가 되고 소위 '나만 할 수 있는 업무' 에 많은 투입이 되는 쾌거(?)를 올리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교훈은 그거였다. 남보다 조금 더 위로 아니, 다른 평행선 상에서 뛰고 싶다면 이렇게 힘들어도 미친 짓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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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2. 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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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P 종료 이후에도 교육이 3주 이상 있어서 상당히 느긋하고 즐겁게 놀았던(?) 것 같다. 사실 입문 교육이라는 것이 미안하지만 내가 뭘하는지도 모르는데 교육을 받아봐야 뭘 얼마나 알 수 있는지도 모르고 실질적으로 부서에 가서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냥 공구 이름이나 공구 사용법 같은 것을 배웠다고 하면 더 효율적인 학습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듯한 내용들은 사실 실제 업무에 있어서는 조금도 도움이 안되었다.

 

드디어 어딘가에 이끌려 부서에 배치되었다. 뭐 아니나 다를까 그냥 공장이다. 지금은 캠퍼스라는 이름으로 공장이라는 이름을 완전히 지워보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지만 공장이 공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공장으로 가는 길은 솔직히 무거웠다. 특히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다 인문계 친구들이라 보험사, 카드사, 은행 등 소위 말하는 금융권의 알짜배기 회사에 입사를 했기에 더욱 부러웠다. 나도 칼같은 정장 바지를 입고 뽀대나게 서울 시내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닌 것을 아는 것은 부서에 배치 받은 후 부터였다.

 

정장을 입은 상태로 가자마자 들은 것은...

"내일부터 청바지 입고와."

음... 잘 생각해 보면 편한 옷 입고 다니니 좋은 것이고 정장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그냥 몸 쓰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항상 청바지에 면티 입고 다니는 것이 편해져서 정장을 입는 것조차 꺼려지긴 하지만 (죽어도 살이 쪄서 못 입고 있다는 말은 못하....(?)으응??)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일을 하길래 옷을 편하게 입고 오라는 것인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이미 거기에 들어가면서부터 느껴지는 군대 스멜(?)은 정말 정나미가 떨어지고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었다.

 

흔히 사수 부사수로 이루어지는 군대의 모습이 정말 그~~대로였다. 지도 선배라고 불리는 사람과 만남이 있었고, 정말... 소위 말하는 지독한 '일벌레' 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며 첫 날부터 시작해서 일주일만 5시에 퇴근을 했고 나머지는 밤 10시 이후로 퇴근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시작하였다. 밤 11시에 가서 삼겹살 먹고 소주 먹고 새벽 1시에 퇴근해서 다시 6시까지 출근하는 모습,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모습이 아닌가? 사실 그 선배를 원망도 해보고 반항 아닌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나 안해! 이러고 그냥 자취방으로 간 적도 있다^^;) 지금은 서로 다른 라인에서 서로 도울 수 있는 선후배 사이가 되긴 했다. 가끔 나랑 일할 때가 정말 그립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단순히 그냥 하는 말이라고 해도 듣기 좋은 것은 사실이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가동이 된다. 와 보면 알겠지만 중간에 정지하고 다시 살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게 짜증나고 힘든지도 안다. 그래서 설비는 24시간 계속 동작이 되어야 하고 그로인해 3교대라는 어쩌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끔찍한 교대 근무를 돌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게 아이러니한게 딱 8시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앞뒤 30분씩은 서로의 내용 전달을 위해서 날려먹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있고 설비가 멈추거나 동작되는 설비에서 Wafer가 부서지는 문제가 생기게 되면 남아 있는 시간이 더욱 늘어난다. 뭐 대기업이기 때문에 야근 시간에 대한 교통비를 칼 같이 지급하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남아있는 시간이 끔찍했다는 것은 와 본 사람이면 알 듯 싶기도 하다 (물론 그걸 그냥 즐기는 친구들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냥 현실은 단순노동 그 이상도 아니었다는 것이 자괴감에 빠지게 했고 무엇보다도 교대 근무는 내 몸을 무너트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항상 피곤했고 항상 몸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그냥 내가 관리를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관리하기가 어려웠던 그런 모습 그 자체였다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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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3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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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사 시에 연수 자체가 없거나 하는 회사에서는 모르겠지만 일단 연수라는 것이 있다면 항상 나중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때가 제일 좋았다."

나 역시 동일하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참 재미있던 기억들이 많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회사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를 때 어쩌면 조금은 순수한 시점에서(대졸자가 뭐 순수하겠냐만은...)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일단 어느정도 연봉도 비슷한 수준이고 말이지...) 친해지기가 꽤나 쉬웠다. 같은 조에 24명이었는데 이름 외우는데 2일이 안 걸렸던 것을 본다면(개인적으로 사람 이름을 정말 외우질 못한다... 머리가 나빠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임펙트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대기업들의 연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SVP(삼성그룹 입문 교육)에 2008년에 입문했다. 지금은 기수문화를 없앤다고 기수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사람 보면 몇 기냐고 먼저 물어볼 정도로 기수문화가 충만했다. 뭐, 신입사원들 끼리는 몇 차였는지 까지 묻는 곳이었으니 향후에는 그 폐해가 없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업(안산 시내에서 카메라만 들고 영업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보험FC 아주머니께 정말 춤을 추면서 까지 해서 한 대를 팔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과 산행(M.A.T 였던 거 같은데 뭐에 약자였었는지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통칭 매스게임으로 일컫어 지는.... 명칭이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 어찌됐건 신나게 춤을 추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밤마다 12시까지 춤연습을 하고 잤는데 평생 이렇게 춤을 많이 춰 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다. 몸치였으니 시간 투자를 남보다 많이 해야하고 특히 몸이 거대하니 그거만큼 둔했다.ㅠ.ㅠ

 

당시에는 솔직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부분이 있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좋은 추억이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동기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도 그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말이지) 군대만큼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어서 더 기억에 남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근데 뭐... 솔직히 여자들도 잘 버티고 하는지라 남자인 나로서는 육체적으로 죽도로 힘들었던 것은 아닌거 같다. 다만 잠이 많은 나에게 잠을 줄이고 뭔가를 하라고 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사실 제목에 적혀있던 입사 후 최고 행복했던 시간은 요 친구들이랑 SVP가 끝나고 서울 서대문 쪽의 레지던스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 방팅도 하고 생일케익으로 얼굴에 문대기도 하고 다양한 게임을 했었다(불과 1박 2일동안!) 술도 정말 그렇게 진탕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다들 그렇게 마시고도 다음날 멀쩡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던 것을 본다면 이제 사회인이 다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 교육기간 중에 느낀 것은 바로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구나."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아도 적어도 나보다 뛰어난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더라"

라는 사실이었다.

 

겸손

사실 이 단어는 그동안 나와는 관련이 없던 것 같다. 한 번도 겸손해 지려고 노력한 적이 없고 모두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SVP 종료 이후로는 생각을 조금 바꿨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았고 그 중 하나인 나는 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떨어지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처음에는 무시했던 친구가 3개국어 능통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뭐 지금도 겸손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다른 사람을 볼 때 항상 장점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에 어쩌면 겸손이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게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어찌됐건 연수는 끝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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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2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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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직도 그날을 잊을수가 없긴하다. 내가 지원한 회사 중 유일하게 제대로 붙은 대기업이니 말이다. 사실 기대를 안했는데 합격을 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생쑈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제일 좋아하셨던 분은 누구보다 부모님이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상대적으로 계속 회사원이셨던 아버지는 그닥 회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 돈은 벌겠구나.... 정도의 생각?) 어머니께서는 정말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집안이 사기를 맞아 꽤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합격이라 돌파구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00년 대 후반~ 2010년 극초반까지 합격한 사람은 알꺼다. 주먹 불끈 쥔 아저씨의 모습을(합격자) 그 당시 사용하던 PC에 캡쳐해서 넣어놓았는데 망가져서 이제는 없고(아, 아쉽다~) 지금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혹시 어떻게 검색하면 나오는지 알면 가르쳐 주라, 사례하겠다...!) 뭐 어찌됐건, 그때는 그저 내 앞에는 꽃길만 가득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합격하고 나서 한 번 다시 보니 나의 직군이 있었다.

F직군??

근데, 내가 뭐로 지원했는지를 그때 알았다. F직군이 뭔가? Fuxx...도 아니고 말이지... 낌새가 좀 이상하긴 했는데 일단 대기업에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어딘가. 근데 당장 부모님과 여자친구 말고는 딱히 자랑할 상황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조선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이 흔들거려서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었고 같은 과에 있는 사람 중 삼성에 들어간 사람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없더라. 내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냥 학교당 배정받은 사람 중 우연히 내가 들어간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때는 그저 내가 잘난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분명이 비중이 가장 클 것 같은 면접에서 너무 당당하게 모른다고 했다. 지금이야 좀 튀는 사람도 뽑는다는 분위기이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분위기도 그리 안좋았던게 면접관들이 엄청 답답해 했다는 느낌이 쫘~악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뒷통수가 그리 따가울 줄 몰랐다만, 뭔가 실수를 해서 붙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용담으로 전해주기도 하지만 입사하고 2년 동안은 부끄러워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도 못했던 사실이다.

 

어찌됐건 5월에 발표는 났고 7월 7일까지는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평생 먹어도 모자를 술을 먹었던 기억만 있긴 하다만, 적어도 어딜가서 위축되고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고 인생에 있어서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기 전, 수능 끝나고 대학교 가기 전과 비교할 정도의 즐거움이 있었던 시기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련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그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말 멀리 한 번 나가보던가, 아니면 회사라는 곳에 발목잡히면 절대 하지 못한 것들을 했었어야 했다(이건 나중에 따로 한 번 글을 써봐야 겠다)

 

이제 운명의 7월 7일(???) 입사 첫 날이다.

특별할 게 없는 하루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정말 재미있었던 시간, 그 때로 돌아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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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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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도 이야기 했듯, 반도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이 갔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시련이 왔다. 내용은 Wafer에는 끝쪽에 Ingot ID라고 하여 Wafer의 No를 Labeling을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을지 묻는 토론 면접 부분이었다.

아뿔싸... 애초에 그게 뭔지도 모르고 Wafer라는 것은 그냥 둥근 실리콘 덩어리라고만 알고 있지, 내가 거기에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 알게 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을 무렵 자리가 한가운데 떡하니 있다는 사실을 조금 후에 알게 되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사회자 봐 줄 수 있을까요?"

 

희안했다. 다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듯 했고 그것이 있던 없던 '나는 어차피 할말이 많으니 상관없어 흐흥' 이런 분위기였다. 다들 그저 부러웠다. 그럼, 예전에 다른 사람들이 사회를 어떻게 봤더라...

손석희? 이거 뭐 이름만 알지 제대로 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럼 또 누가있나.. 여기서 유재석 처럼 재미있게 사회를 볼 것도 아니고...

 

 

<좀 도용했습니다. 손석희 사장님^^>

 

그런데 의외로 사회자의 역할이 내가 딱 맞았나보다. 단순히 의견 정리해서 중간중간 설명해 주고 내 의견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당연히.. 모르니까 제시를 안하겠지...) 토론을 이끌어 가니 어느덧 15분이 훌쩍 넘었더라. 그래서 종료되었는데 의외의 반응

 

"사회자가 참 잘 본다."

 

오, 의외다. 사실 내 재능은 사회 보는 것에 있지 않을까? 라는 어이없는 생각과 함께 토론면접이 끝났고 인성면접장으로 이동했고 사실 인성면접에서는 키가 190cm이었던 관계로 주구장창 키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다. 왠지 인성면접은 그냥 면접하기가 귀찮아서 아무거나 물어보는 장소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앞에 있는 사람도 뒤에 있는 사람도 그냥 개인적인 질문만 하다가 끝난 것 같다.

 

자, 이제 오늘에 마지막 난관인 기술면접이 남았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남에게 설명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 회사를 10년 가까이 다녔음에도 자신있게 내가 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하는 가에 대해서 설명하라고 하면 조금 어려움이 있다. 단편적으로 하는 일이야 어느 회사나 다 똑같을테고 뭔가 다른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물어볼텐데, 사실 Wafer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닌 Robot이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Wafer 만들어.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있다(그래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청소한다고 해도 믿지도 않고 말이지...)

어찌됐건, 주제를 주고 10분동안 생각한 다음 발표하는 것인데, 아마 100분을 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그냥 들어갔을 주제였다.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발전의 차이를 설명하라'

 

1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이것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인거 같은데, 지금까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이유는 이렇다. 모르는 것은 사실인데 회사에서 당시에 추진하던 것이 태양열발전의 전지를 구상하고 있었던 듯 하다, TF까지 꾸려져서 진행을 한 것 같은데, 생뚱맞게 유가는 향후 몇 년 뒤부터는 쭉쭉 떨어져서 해당 발전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 2차전지 발전과 LED의 대두가 진행되면서 다른 계열사로 이동이 되었고, 결국 태양광/열 발전은 그냥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뭐, 간략하게 설명하면 빛과 열의 차이인데, 빛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것과 열에너지를 전기를 바꾸는 것이라고 보면된다(너무 간단한가?) 어찌됐건 당시에는 그것도 몰라서 그냥 무작정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솔직히 이 부분은 공부를 안해서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다음주에도 여기 면접이 계속 있는 것 같던데 다음주에 다시 와서 설명하면 안될까요? 어설프게 설명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며, 놓치지 않을 인재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니 오글거리긴 한다. 거기다가 완전 미친놈 같다. 뭘 믿고 저런 헛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차피 토론면접 때 한 번 충격이 와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했고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니 그냥 좀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뭐... 남들은 10분 이상 하던데 난 3분 만에 튀어나왔다.

 

"다른 회사 찾아보자"

 

라는 생각을 했지만 당장 남은 곳이 몇 개 없는 상황. 돌아오는 길에도 푹 잠을 잔 나로서는 이제 낭떠리지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일을 해주겠다는데 왜 받아주질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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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
2017. 1. 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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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갖고 싶었던 직종은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은행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하던 2007~2008년은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주변 부동산이 싹다 몰락하고 있는 상태였고 기업들은 부도가 나나 안나나 걱정하고 있던 시기라 전체적인 공채도 인원이 절반 이상 삭감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금융권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만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삼성생명에서 인턴쉽을 했는데(나중에는 결국 없어진 듯 하지만 보험영업자를 키우려고 하는 인턴쉽이었다. 난 좋았는데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삼성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기도 했고 합숙이라는 것에 정말 많은 매력을 느끼는 시기였다(언제 여자들과 같이 합숙을 해보았겠나... 공대 테크트리가 다 그렇지 뭐...)

 

사실 그곳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장점만 보여줬으니 당연히 좋아보였겠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금융권 근처도 못가보고 광탈했다. 최종 합격한 곳이 전혀 없었으니 뭐..... 사실 우수한 학교의 공대생도 아니고 뭐하러 나를 뽑았겠냐라는 자기 위안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조금은 아이러니 했던 것이 생각보다 서류합격률은 높았다는 것이었다(이렇게 말해도 40개 중에 고작 7개 밖에 안되었었다^^;;) 그러던 와중 중견기업이었던 D사에 영업지원으로 합격을 하였고 2008년 4월 1일자로 발령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뭐에 씌었던 걸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사 쪽에 전화해서(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안간다고 했다. 사실 지금 보자면 거기라도 합격을 했던 것이 감지덕지 한 일인데 뭘 믿고 전화를 해서 안간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일단 지르고 나니 왠지 모를 '자신감'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여자친구가 한 번도 없을 때는 여자들한테 말도 못 걸지만 한 번 사귀어 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괜한 자신감이 생겨서 여자들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나만 생기는 미친 버릇이었나...)

 

...........

그 이후로 정말 20여개 기업에서 '당신의 능력은 출중하나.... 어쩌고 저쩌고'. '귀하의 뛰어난 실력은 어쩌고 저쩌고...' 금융권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공대라고 생산지원이나 엔지니어링으로도 지원을 했는데 역시나 무참하게 밟혔다. 한 달정도 진짜 집에 적막이 흘렀다고 했었다(부모님의 나중에 이야기에 따르자면 말이지...) 수능을 망치고 와도 10분 울고 끝나고 넘어갔었는데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다. 내가 왜 포기를 했는가에 대해서 많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뱉은 말들이 많아서 그 많던 자신감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흔히 취업생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삼성그룹 공채에서 서류에서 떨어지면 그냥 다른 대기업은 포기하라고... 왜냐하면 그냥 다 붙여줘서 그렇다.(학점 3.0 이상에 영어시험도 거의 자격수준만 넘으면 OK) 지금은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당시에는 SSAT(싸트) 라고 했었다. 왠 수능 다시 공부하는 느낌으로 공부를 했는데 내가 왜 합격을 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 잘 본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통과를 했으니 잘봤다고 믿겠다^^;

 

20개 떨어지고 적성시험 합격한 유일한 회사가 사진의 삼성전자이다. 사실 워낙 뽑는 인원이 많아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대생의 마지막 보루(LG 디스플레이와 더불어...) 라고 했던 곳인데 당시 반도체 쪽이 완전 망할 분위기여서 인원이 대폭감소되었었다. 기억으로는 나 때 그룹 전체 공체가 2000명 대 였으니 지금 만 명 넘게 뽑는 거에 비해서는 정말 적은 숫자였다. 더군다나 내가 지원한 회사는 당장 말할 분위기라고 이야기 하던 삼성반도체 였다. 사실... 적성검사 합격 이후에 갑자기 반도체를 보기 시작했는데, 일단 반도체라는 정의만 알고 있었지 해당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에 가까웠었다. 철강재료/비철금속재료 등 금속 관련 공부만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애초에 이걸 아는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20개 탈락 이후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었으며 나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어차피 남은 대기업 공채들은 대부분 탈락을 해서 몇 개 남지도 않았었는데 면접까지 갔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면접이 3:1~2:1 수준이 된다고 하니 정말 이번에는 희망을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양재역 주차장에서 기흥사업장으로 갔었는데 가는 길에도 공부를 해보려고 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그냥 버스에서 기절했다. 난 정말로 긴장감이 없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다. 주변에 정장입었던 다른 애들은 정말 차에서 조용히 중얼중얼 대던데 말이지... 어찌됐건 기흥사업장에 들어와서 간 떨리는 면접은 시작되었고 반도체라는 것에 대해서 2주 공부하고 갔던 나에게는 정말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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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