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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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할 때부터 정말 퇴사율도 높고 많은 사람들이 하기를 꺼려하는 업무 중 하나인 Set-up 업무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 볼까 한다. 사실 라인이 계속 지어지는 한 해당 업무는 반드시 필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설비 엔지니어로서는 한 번은 겪고 갈 수 있는(뭐 운빨로 Set-up 라인을 다 피해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나중에 조금 애매한 상황이 생기긴 한다) 업무이다. 말 그대로 설비 엔지니어의 본업인 '설비'를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고 Part별로 그리고 설비 별로 시간이 모두 다르긴 하지만 내가 맡았던 곳에서는 보통 설비 셋업 자체는 30~40일가량, 그리고 양산 전환까지는 약 3개월 정도가 소요되곤 했다. 그런데 이 많은 업무를 내가 다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심지어 대부분의 업무를 업체가 다 해주는데!) 이상하게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크다. 이유는 다음에 설명해 보겠다.

 

첫째, 납기가 말도 안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인데 '안전하게 빠르게' 라는 말도 안되는 구호를 외치면서 진행을 하게 된다. 근데 납기 자체를 정말 '가장 빨리 가능한 날짜'를 기준으로 잡아놓고 딜레이가 되면 왜 늦어지는지를 계속 말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욕이 난무한다. 후에 소위 짬밥 좀 찬 다음에는 그룹장 하고도 대놓고 싸운 적이 많은데,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높은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데 무작정 가능하다고 보고를 하고 칭찬받고(?) 그걸 우리한테 강제한다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이다. 1대를 기준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셋업 라인에서 보자면 여러 파트가 동시에 진행을 하는데 우리 파트의 설비만 빠르게 셋업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 설명을 아무리 잘해도 그저 불만만 들으니 일하는 사람도 짜증 나고 스트레스가 넘친다. 그 덕에 업체 엔지니어에게도 몹쓸 짓(?)을 자주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처음 한 두 번이야 좀 빠르게 해 주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분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여력이 안된다(소위 배 째라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근데 몇 개의 라인이 지나가도 이렇게 진행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문제인데 고치지 못하는 것은 누구 문제일까?

 

둘째, 항상 주 6일 근무에 야근을 기본으로 달고 산다.

지금도 의문인 것은 그렇게 하루나 이틀 빨리 한다고 해서 나의 연봉이 올라가는지, 아니면 보너스를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미친 말처럼 빠르게 하기만을 바랄까? 그 빠르게 하는 와중에 실제 진행과 보고 내용이 전혀 다른 경우가 나타나게 되고 나중 가면 혼돈이 오게 된다. 지난번에는 이렇게 빨리 했는데 이번에는 왜 빨리 못해? 이런 식의 답이 많이 나오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보고서 자체가 거짓말이었으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 사람도 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렇게 진행이 된다. 난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한 번은 정규 업무시간만 딱 해서 셋업을 해보고 차이를 비교해서 크게 차이 안 난다면 정규 업무 시간에만 딱 셋업을 하고 마무리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신규 라인을 가더라도 시간에 대한 걱정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이런 장기 야근과 다른 이슈로 인해서 뭔가 큰 사고가 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 보고 있다.

 

셋째, 룰을 파괴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한창 사고도 많고 환경안전 이슈로 인해서 문제가 많은 이 시기에 환경안전 룰이 복잡해지는 것도 굉장한 문제지만 (보면 정말 쓸데없는 페이퍼 웍만 늘어나고 있다. 환경안전이 같이 사고가 나지 않고 도와줄 생각은 안 하고 항상 지적질이니 그것도 문제이긴 하다) 어떤 룰을 만들고 그것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그 룰을 파괴해서 더 빠르게 납기를 맞추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 이게 맞는가? 예를 들어보면 어떤 결재를 올렸는데 결재가 문제가 되어 다음 날 진행해야 되는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소리 지르고 타박을 하다 보면 베테랑 누군가가 다른 부서와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교묘히 넘기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근데 이런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룰을 만들어 놓고 그 룰을 파괴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상황이라니 너무 어이가 없긴 한데, 실제 설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이런 적이 너무 많아서 나 역시도 그렇게 룰 브레이커로 이름 날린 적이 좀 있다. 하고서 느끼는 건 정말 이렇게 해도 되나 싶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줄었다고 하지만 또 급해지면 누군가는 이렇게 할 것이다. 원천적으로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납기를 현실적으로 바꾸면 된다.

 

최근 각 기술팀에서는 셋업만 담당하는 팀을 따로 구성하는 등과 같이 여러 방식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고 계속 문제를 달고 나갈 것이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사실 개인적인 엔지니어의 능력이 아니라 센터장이든 재 드래건이든 상위권자가 근본적인 개혁의 칼을 갈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결론적으로 안 바뀐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내가 작성한 이 글을 보고 S사든 H사든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를 하려는 친구들이 많이 글을 남기거나 메일을 보내곤 하는데 본인이 어떤 업무에 있어서도 자신 있다고 하면 바로 지원을 그렇지 않다고 하면 정말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내 개인적인 심정이다. 돈은 다른 기업에 비해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을망정 나중에 정말 '난 몇 년간 뭔 일을 했지?'라는 답을 얻고 싶지 않으면 처음부터 지원을 하지 말던지, 아니면 확실한 출구 혹은 결심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 좋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요즘은 편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왜 군대는 그냥 가기만 해도 싫었던 그런 곳 아니었나? 지금도 사내에서 가끔씩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서 '~~ 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겠냐' 라는 내용도 오는 것을 보면 항상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꿀 수 있다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가지고 입사하지는 말고 내가 한 번 적응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입사를 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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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