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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23 11화_그럼 장점을 한 번 찾아볼까?
2020. 2. 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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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미친듯이 나쁜 점만 강조해 왔다면 장점도 분명 있으니까 이런 직군이 유지되니 한 번 장점에 대해서 진득하게 이야기를 해보자.

 

1. 갈구는 사람은 넘쳐난다. 근데 생각보다 용서도 의외로 잘된다.

 

엄청나게 뭐라는 사람은 넘친다. 그런데 설비 엔지니어서 사고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 아무리 커도 10 Lot 이내다. 다 때려부수던 뭘하던 간에 설비가 고장나서 문제이지 사고 자체가 그 라인의 그룹장이나 직장의 존재 여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경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공정엔지니어는 그런 사소한 문제는 크게 나지 않는 반면에 실수가 하나 생기면 정말 '대박' 사건이 발생되게 된다. 10년 이상 보면서 그런 사고를 친 사람이 롱런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사고 보고서도 정말 징그럽게 써야 하고 끌려다니는 것도 어마어마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공정 엔지니어를 설비적으로 '보좌' 하기 위해서 회의를 들어간 적이 있는데 이게 과연 2010년대의 회의 모습일까 싶을 정도였다. 설비 엔지니어는 그정도는 아니니 안심하자.....(근데 어차피 욕먹고 열받는 것 똑같다는 느낌이다)

 

2. 화려한 페이퍼 웍의 기대를 애초에 하질 않는다.

 

이 직군의 소위 고참들의 특징들이 있다. 페이퍼 웍에 상대적으로 굉장히 약하다는 것인데 특히 '장' 급 타이틀을 달고 못하는 사람은 그동안 누군가가 대신 작성을 해줬기 때문이고 오직 입으로만 설명하는 것을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추측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거의 확신한다) 항상 PC 앞에 붙어 있는 공정이나 제조 쪽과는 다르게 설비를 만지는 일이 잦은 그들에게 PPT나 엑셀은 선택받은 소수의 인재들에게 몰빵이 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본부 쪽에는 오직 보고서만 담당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전체적으로 Low Quality 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자주 하지 않으니) 그래서 상대적으로는 큰 Quality를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팀장이나 그룹장이 그냥 간결한 것을 좋아하거나 구두 보고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최고의 상황이긴 한데, 이 역시 나중에 이르러 그들과의 차이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어차피 10년쯤 넘어가면 슬슬 페이퍼 웍에 집중하게 되는 시점이 오는데 그 때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스스로 잘 기회를 갖고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도태된다. 평생 닦고 조이고 기름칠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3. 돈 좀 만져본다.

 

돈을 좀 만진다는 의미는 반대로 말하자면 건강을 잃어버린다는 말과 일맥상통이다. 교대 근무하면 수당도 붙고 OT를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수당들은 내 자산을 튼튼하게 하나 내 몸도 같이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근무가 계속 바뀌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는다면 정말 쥐약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불만 사항을 뒤로 젖혀두고도 보자면 돈은 확실히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맞다. 나는 결혼하고 한 번도 맞벌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는데 모아온 돈은 맞벌이보다 어느정도는 비슷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만큼 착착 쌓이는 것이 많기도 하고 월급날 얼마 나올지 기대 반, 설레임 반으로 지샐 때가 있다. 적어도 삼성전자 내에서는 어느 직군보다 돈을 많이 만져볼 기회는 있다. (나름 보너스도 팡팡 터지는 편이니 얼마나 좋은가?)

 

4. 개인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부서를 파견와서 항상 고민이 되는 것은 새로운 목표 설정 부분이다. 각 부서별로 임원의 MBO 목표와 개인의 KPI를 작성하는 것인데 솔직히 설비 엔지니어는 적어도 10년간은 그냥 부서 목표만 따라가면 되고 개인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인재 육성? 외국어? 다 개나 줘버리라고 해라. 어느 사람이 와도 그냥 고과는 돌려먹기였다. 항상 그런 것에 분노를 느끼고 어필을 한 적도 많이 있지만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고과 못받을 거 같으면 아무것도 안하는게 상책이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평가라는 시스템은 사실 이제 미국 기업에서는 14% 정도만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이미 90년대 말에 들어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 코웍을 해야 하는 부서원과 경쟁을 하라고 하는 이 희안한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그냥 개인 목표는 개나 줘버리자. 사실 편하다. 목표는 Ctrl+c/Ctrl+v로 하고 심지어 점만 찍어놔도 아무도 안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그냥 신경 쓰지 말자(물론 말로는 다 적으라고 하는데 이미 고과 줄 사람이 정해져 있다. 뭐하러 하나?)

 

적으면서도 장점이 대부분 단점 같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왜 이렇게 직군에 애정이 없냐고 물어본다면 주변에 이 직군에 애정이 있는 사람을 정말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적어본다는 것이다. 10화 까지 쓰면서(2년간...) 단 한 명도 '왜 너만 그렇게 생각하니? 실제로 우리 직군은 나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우울하다는 의미이다. 에휴.... 다음화에는 마에스트로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얼마 전 회사 블라인드에도 올라올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도 한 번 짚어보면서 생각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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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