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3. 00:16
728x90

 

"질문 있습니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 정말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시간이 늘어나는 문제도 있겠지만 괜시리 그 사람이 튀어보이고 얄밉다. 궁금하면 혼자 가서 물어보지 왜 그럴까? 그런데 사회에 나가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질문하는 방법을 몰라서 어떤 일을 할 떄 계속 틀려도 그 길로만 나아간다는 점이다. 질문 몇 번만 하면 정말 쉽게 알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고 지금 내 밑으로 오는 후배들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바꿔 생각해 보자면 질문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도 있지만 질문 자체를 두려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일 것이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경청' 해 주는 사람이다. 오늘도 회식을 하면서 사실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많이 하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초반에는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도 지쳐가고 다른 사람도 지쳐갈 때 쯤 누군가 몇 가지 화제를 질문으로 하였다. 그 사람은 불과 몇 마디 되지 않는 질문을 통하여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특이한 것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도 분명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경청하는 것이 참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입은 항상 근질근질하고 귀는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일거다.

 

최고가 된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최고가 되기 전부터 하나의 습관을 길러왔다고 한다. 바로 질문하는 것인다. 질문이라는 것은 어쩌면 가장 효율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가까워지게 하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질문을 통해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도 있지만 질문을 해야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질문이 아닌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에게 흥미가 있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그런 질문. 그렇다. 질문을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이 이런 것을 잘한다. 그들은 자신을 너무 내비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면 질문을 통해서 알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 한국의 현실이다.

 

회사에서 팀장님께 결재를 맡아야 하는데 대하기 어렵게 높은 분이라고 결재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서 아예 직접 찾아가서 여쭤봤다. 결재가 밀려 있을 때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편하냐고. 그냥 문자 하나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문자를 보내면 결재를 해 주신다. 이렇게 간단한 질문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를 10년동안 아무도 풀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이가 없지만 그만큼 한국 사람은 '질문' 이라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어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질문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저자가 꼭 성공해서 이런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한 발짝 먼저 '성공' 이라는 열매를 먹었고 그런 와중 이 질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다면 세상이 편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을 통해 얻어낼 수 밖에 없다. '화장실이 어디예요?' 와 같은 직설적인 화법도 있지만 때론 간접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어쩌면 '명령' 이 아닌 '질문'의 경우 정말 많은 공부를 통해서 준비해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쉽게 하는 그런 질문이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말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그런 질문 말이다.

728x90
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