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잠시 인문학의 부활이니 뭐니 잠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것은 많은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 중 하나라고 생각은 되지만 실용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기본적인 소양으로 배워야 할 부분을 많이 놓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로인해 감수성이 생겨나야 할 나이에 읽었던 내용들이 너무나 학습 위주로 읽게 되어 고전을 멀리하게 되고 인문학 도서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 때 그 시기에 읽지 못했던 그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감정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문학에서 정말 가장 실용적이라고 한다면 바로 '사랑한다' 라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냥 단순히 '사랑해' 라고 하면 그 여자가 나를 같이 좋아해 줄까? 물론 엄청난 부자이고 조각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을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이 그렇게 쉽게 응해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초콜릿같은 단어 선택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라는 사람이 매우 달콤하고 매혹적이라는 것을 표현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이 아닐까?
이 책에서 보면 많은 유명한 작가들의 뒷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다들 다른 삶을 살았지만 전부 동일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굴곡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굴곡이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들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 작품들은 겪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그런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고난의 스트레스 속에서 주옥같은 작품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더 그 작품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렇다. 결국 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고민한 결과를 반영하는 하나의 역경이 아닐까?
책을 읽다보니 중간에 '어느 철학자 부부의 죽음' 이라는 내용이 있다. 부인에게 집착이 있었던 남편은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길까봐 아이도 갖지 않았는데 결국 죽음이라는 길목 아래 부인을 먼저 보내기 싫어 같은 날 죽음을 택하게 된다. 그가 죽기 직전 보낸 편지인 <D에게 보낸 편지> 중 이런 문구가 있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나 줄었고, 몸무게는 불과 45킬로그램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과연 나라면 그 나이에 내 부인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부끄러워서 못하겠지만 글로는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 내 마음을 글은 정말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다.
내가 빠져들 수 있는 글쟁이는 과연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무언가 버라이어티한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그 안에 하나하나가 모두 여러 고민 끝에 그런 글들이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기회에 인문학 책 한 권 정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가? 인문학 속으로 한 번 풍덩 빠져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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