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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13 14화_뒤에서 채찍질 당하는 말의 느낌, 부품 업무 14
2020. 4. 1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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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에서 징글징글한 SET-UP 업무를 뒤로 하고 시작했던 업무 중 하나인 부품 업무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신입사원 때 선배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워 했던 업무가 바로 부품과 전산 업무이다. 일단 앉아서 하는 업무이고 교대근무 일주일 정도만 들어가도 그 업무만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사실 당시에 윗사람들 말로는 설비를 전부 알아야 이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생각을 해보면 제조 쪽에서 넘어온 여사원이 이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는 거 보면 그냥 '구라'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업무라는 것이 처음에 힘들 수는 있긴 한데 어느 정도 넉살 좋고 업체랑 조합만 잘되면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 기도 하다. 어차피 그냥 라인 내 친구한테 사진 찍어 달라고 하고 업체에게 강제시키고 계속 재촉만 하면 그만인 업무니 말이다. 업무 자체를 조금 비하한 부분이 있기도 한데, 이렇게 비하하는 이유를 자세히 적어 보겠다.

 

먼저, 부품 업무라는 것은 사실 라인 내에서 진행할 때는 부족한 부품을 보충해 줘야 하는 것이 본업이다.

그런데 부품을 하다보면 당연히 비싼 것도 있을 것이고 싼 것도 있을 것이고 자주 혹은 반대로 거의 나가지 않는 부품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것을 아무리 예측을 한다고 해도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예상을 해야 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직장 혹은 그룹장들은 부품이 없으면 난리 법석이다. 항상 말하는 것이 똑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가져와라' 이런 의미이기 때문에 주변 라인이나 혹은 망가진 설비, 아예 폐기 처분된 설비에서까지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향후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업무를 하면서 얻어온 부품이라니... 과연 정상일까? 안도감은 느껴지는데 답답함이 계속 밀려온다. 왜 정석적인 방법을 하지 않고 항상 이런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을 택할까? 금액 절감을 위해 Stock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의 창고 운영이 기본 문제인 듯 하나, 복합적인 문제(구매 쪽등...)가 있을 터이다. 그런데 아무튼 이런 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하루 똥줄(?) 타는 기분을 경험하게 된다.

 

둘째로 이렇게 단순히 부품 조달(?) 업무에 목숨을 걸다보면 본인이 그냥 부품을 조달해 주는 말 그대로 시스템만 할 줄 아는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사실 신입 사원에게 시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초기 2년 시점에 이것을 해버리면 소위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이 업무에 대한 고과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내가 본 10년간 해당 업무로 상위고과를 받은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으니 그냥 '거쳐가는' 업무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상위 고과가 나온 사람들의 경우 사실 해당 업무를 해서 고과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진급'이라는 시점에 발맞추어 받은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어찌 보면 앉아서 할 수 있는 업무라고 하지만 가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업무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다른 개선 업무나 그런 것을 할 시간도 적을뿐더러 업체 측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개선 업무의 경우 소위 직급이 상위 직급까지 가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행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일은 더럽게 바쁜데 정말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거의 혼자 업무를 독점하다보니 새벽에 문제가 생겨도 밤에 문제가 생겨도 무진장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설비 주무 업무를 할 때만큼 전화 연락이 자주 오는 것이 있는데, 망할(?) 동료들은 위치를 적은 메일을 아무리 보내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전화를 한다. 개인적으로 심성이 살짝 고운(?) 편이라 전화를 웬만하면 다 받아주는 입장이긴 했는데, 이 업무를 보통 성격이 '포악한' 사람들이 많이 맡는 이유도 알 거 같긴 했다. 좀 메일도 찾아보고 노력을 했으면 좋겠는데 본인들 업무가 너무 바쁘고 쉽고 빠르게 하려고만 하니 항상 전화질(?)이다. 뭐 물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그게 맞는 일이긴 하겠지만 받는 사람은 스트레스 터져 나간다. 근본적인 이유는 '설비는 다운되면 안 된다'라는 답답한 생각 때문이다. 애초에 생산 자체를 100% 기준으로 자꾸 하다 보니 그런 부분인데 3개 회사가 거의 독점하는 상태에서 무조건 양산에만 목숨을 거는 현 상황이 제대로 된 상황인지는 조금 의문이긴 하다.

 

마치면서 사실 업무를 조금 더 깊게 파 보자면 이 업무를 통해서 업체의 신기술이나 혹은 개선된 것을 가장 빨리 알 수도 있기도 하다. 이렇게 받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할 수 있는 기회도 또한 존재하기 떄문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각 공정마다 계속 필요한 부품들에 대한 정보는 바로바로 습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혜택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때문에 고통에 휩싸이는 업무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설비 엔지니어로서는 반드시 거쳐가는 것이 좋은(왜 이렇게 구성이 되는지 어떤 부품을 어느 정도 Stock 하고 있는 것이 좋은지 등) 업무이긴 하나 다시 하라고 하면 그리 하고 싶지 않은 업무이기도 하다. 뭐 나름대로 길게 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급격히 변하는 라인에서는 정말 힘든 업무 중 하나인데, 어느 정도 대비를 하고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주저리주저리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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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