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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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조차....

한국 사람은 내가 100만 원 벌고 옆에 사람이 200만 원 버는 것보다 내가 50만 원 벌고 옆 사람이 45만 원 버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미련한 것이냐고? 멀리 있는 사람이 많이 버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뭔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돈을 더 벌거나 혹은 내가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돈을 똑같이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큰 분노를 느낀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회사에 와서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당장 같은 부서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인데 거기다가 연봉도 똑같은데! 하는 일이 너무나 육체 노동자와 사무직과 같은 느낌이 느껴지는 분위기이다. 차라리 다른 부서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일 텐데 바로 제조센터 내에 '설비 엔지니어'와 '공정 엔지니어' 간의 차이이다.

 

조직마다 다르지만 내가 있던 곳은 처음에 입사를 하면 기본적으로 공정 엔지니어도 설비에 2년 정도 근무를 하게 된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면 그닥 쓸모없는 짓인 거 같긴 한데 누군가가 그런 의견을 냈으니 그러려니 싶긴 하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한 게 공정 엔지니어 입장에서는 2년을 날려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특출 나게 잘하는 거 아니면 공정 엔지니어에게는 상위고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들 스스로도 그냥 업무를 대충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고 말 그대로 군대처럼 2년만 버티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다. 설비 입장에서도 인원만 차지하고 있고 굳이 열심히 가르쳐 봐야 넘어갈 친구에게 정을 줄 필요도 없으니 양쪽 다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공정 엔지니어도 설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설비를 알아야 할 부분이 굳이 설비를 고치고 교대근무를 도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전혀 상관없이 그냥 머리수 채우는 정도로 돌리는 부분이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떤 멍청이가 이런 제도를 생각해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오히려 나중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친구들이 공정으로 넘어가서 설비 때 하던 일을 하다가 공정 업무를 하게 되면 정말 몸이 이렇게 편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적으로 설비보다는 상위에 있는 부서 형태로 되어버리니 업무를 지시하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게 되는데 그래서 설비 쪽에 있는 선배들은 '그 친구가 설비에서 공정으로 가게 되었더니 초심을 잃었다.' 라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설비 업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도 하게 된다. 설비로 다시 갈 바에는 퇴사를 하겠다는 다짐도... 어떤 수준인지 알겠나? 이만큼 설비 엔지니어의 입지는 좁고 힘들고 슬픈 것이 현실이다. 당장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조차 한 번 경험을 하고 다시는 하기 싫다고 할 정도이니 말 다했을 것이라 보면 좋겠다(일전에 같은 부서에 인사팀에서 있다가 설비 엔지니어로 온 희한한 케이스도 있었는데 나 오고 나서 1년 뒤에 퇴사하더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기존 설비 엔지니어 혹은 신입 설비 엔지니어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이런 부분 때문에 퇴사율이 높기도 하다. 그런데 회사 내에서도 알고는 있지만 딱히 어떻게 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이긴 한다. 현재 있는 지배구조(?)가 과거 선배들의 '까라면 가' 이런 상태이니 변화를 주긴 어려운 상태이고 전체적으로 현재 들어오는 친구들이 꼰대 마인드 없이 잘 커간다는 전제 하에 한 20년 가까이 지나야 변화가 찾아올 듯하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현재도 업무를 시스템화하고 인력을 계속 줄여 나가는 입장이라 그냥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의 업무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이런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듯한데, 작년에 그래서 공정과 설비를 통합해서 운영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테스트를 하네마네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현재는 홀드 된 상태이다. 기존의 사람들이 불만이 너무 많기도 하고 설비든 공정이든 이제 20년쯤 지나신 분들은 더 이상 배우고 싶어 하는 부분이 없어서 합쳐지는 변화가 싫기도 할 것 같다. 민감한 사항이지만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도 맞다.

 

지금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무조건 하라면 해라고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인것 같다. 이직 준비를 아예 회사 입사 때부터 하는 친구도 있고 불만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90년대생의 모습을 보아온 결과 그들에 맞게 회사도 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은 그들의 힘이 좀 부족하고 입사를 하려는 사람이 넘치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실제로 들어왔던 친구들의 퇴사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고 실제 여러 사이트에서 이 직군만은 가지 말라는 내용이 넘쳐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과연 이러한 시선과 모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존과 같은 방식이라면 향후 직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것 같은데 심각성은 인지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교육을 하는 것을 언제쯤 끝내고 시기적절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한 상황이다. 대기업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를 하기보다는 자신의 직무가 정말 맞는지를 한 번 더 고민하고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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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