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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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생이었다. 사실 공대를 선택한 것도 조금 흐릿하긴 한데 그냥 아버지가 엔지니어라서 나도 그 길을 따라가면 지금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느 고등학교 3학년 생이 다 그렇듯 그저 성적에 맞춰서 학교를 갔고 공부는 그닥 잘하지 못해서 간신히 서울 내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던 것 같다. 그나마 당시에는 학부로 입학을 하였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과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실제 공부를 해보니 물리나 화학같은 학문은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공식을 통해 풀어내고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답을 쫓아가는 답답한 학문이라고 생각을 했고 거기다가 소질도 없었는지 성적도 계속하락만 하였다. 어찌보면 여느 적응 못하는 공대생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고나 할까? 1,2학년은 그냥 여자만 쫓아다니다가 끝난 학년으로 보면 쉬울 것 같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겁나 웃긴 나라다. 이 시기가 되면 남자들은 또 하나의 고민을 하게 되는데 사람을 2년 이상(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2년 3개월을 넘게했다... 공군이었다... 흐아...) 자아성찰의 시간으로 빠져들게 하는 시간을 준다. 뭐 우리 부모님은 이 시간이 지나서 내가 정신차렸기 떄문에 회사도 다니고 있고 한다고 하는데 생각을 해 보면 그 좋은 시간을 왜 그렇게 허무하게 소비했나라고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군대에 가서 군 생활을 하는 것이 아깝다기 보다는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았는데 그 시간을 너무 쉬는데만 활용을 해서 허무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덕분에 자아성찰은 겁나게 많이 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돌아온 학교에는 지난 2년의 학교생활의 결과가 참혹하게 나와 있었다. 2점 대의 학점과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전과도 안되는 상황, 거기다가 굳어버린 머리에 원래도 좋아하지 않던 과목들만 득실득실해서 다른 것을 해야 겠다는 생각만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 경영학과로 가서 학회도 들어보고(사실 그냥 놀러갔다고 생각하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1년도 생활하지 않고 뛰쳐나왔으니 말이다) 삼성생명에서 인턴쉽도 진행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나름 즐겁고 성실하게 생활했던 것 같은데, 고작 2년이란 시간이 나의 운명을 뒤바꾸기에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려고 시작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실패만 거듭하고 엄하게 생각도 안했던 전공을 살려(?) S전자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사업부는 반도체 사업부인데 난 철강 공부했다... 전공따위...

 

 

 

회사 생활은 솔직히 군대 다시 온 느낌이었다. 그래도 군대는 2년 지나면 마무리 되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건 아니었다. 3교대를 도는 것도 싫었지만 근본적으로 설비를 '고치는' 것에서는 아무런 희열을 느낄 수 없었다. 뭐 그렇게 생각만 했지, 결국은 어떻게든 해 나간 것이 나름의 능력이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항상 마음 속 어딘가에는 꼭 다른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돌이로 설비 고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나를 알아주고 다른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지? 사실 대기업이란 간판 아래 다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버린 셈이 되었다. 다른 회사 영업기획이나 인사팀도 합격을 했었는데 연봉과 간판을 보고 가질 않았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기회를 버린 것이 되었다. 처음 1~2년은 대기업이라는 간판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특히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좋았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바뀌는 건 없었다.

 

장장 무려 10년이 지났다. 10년이 지나도록 한 라인에서 내부적인 업무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도태되고 있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업무이기 떄문에 더 열심히 해야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는 점이고,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이 일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련하게 그걸 10년이나 하고 있었냐라고 물어본다면 결국 돈 때문에 아무것도 포기 못한 내가 문제이리라. 하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았는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서 이동의 기회가 왔다. 교육 부서로의 1년 6개월간 파견이었는데 원래는 나한테 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어떻게든 내 기회로 가져오려고 노력한 끝에 내가 파견을 가게 되었다. 물론 우리끼리는 비정규직이라고 하여 언제 돌아갈 지 모르는 입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내가 있던 곳을 벗어나서 멀리서 바라보니 왜 그곳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갔는지 이해를 못하겠더라. 어쩌면 다시 돌아간다면 적응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주 5일제를 해 보았다. 다른 회사들은 다 그렇게 한다는데 왜 난 그런 것을 이제야 경험을 했을까? 파견을 와서 다른 사람을 교육한다는 점에 대해서 처음에는 매우 어려움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니 여러가지 요령이 생겨 이제는 무척 즐기고 있다. 맨날 기계에 얼굴을 대면하고 하는 것보다야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 점에서 난 기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난 더 편한 것 같다. 어차피 기계 망가지면 욕만 먹었지 딱히 얼굴 맞대고 좋은 이야기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어찌됐건 파견 온 부서에서는 퇴근도 빠르게 할 수 있고 해서 파트장꼐서는 대학원을 추천하였다. 세상에 이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가라고 말하는 부서장을 본 적이 없었는데 파트장 본인이 대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추천을 하는 부분이긴 했지만 난 그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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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르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