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웰빙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웰다잉 시대로?
사람이 불과 몇 십년전만해도 60~70세면 엄청 오래 사신 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60~70세면 청춘이라고 한다. 이것이 축복인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인생을 좀 더 오래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이룩한 의학 기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즐기면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 아름답게 세상과 이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이 된다. 심지어 스스로의 영정사진을 미리 만들고 그것에 대해서 탐구할 수 있는 곳도 생겨나고 있으니 죽음에 대해서도 어쩌면 단순히 먼 이야기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든 뭐든 모든 생명체에게는 동일하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 있어야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더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죽음이라는 것 떄문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따르게 되고 종교라는 것이 태어나게 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사후에 어떤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외의 모습을 보면 죽음조차 축제로 느껴질만큼 흥겹게 진행을 하는 곳도 곳곳에 있다. 배우자의 죽음이나 자식의 죽음같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슬픔이 있지만 그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게 하도록 축제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즐기기 위해 생일 잔치를 준비하는데 자신의 노모가 생일 이전에 먼저 돌아가셔 버렸다. 본인 생각에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일과 노모의 장례식을 한꺼번에 진행하고자 친척을 부르는데(한국과는 다르게 하루만에 올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경우도 많이 있기에 우리 정서에는 다소 안 맞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로부터 발생되는 에피소드들이다. 이렇게 줄거리를 적어놓긴 하지만 그 안에서의 대화들은 전혀 당장 죽을 사람처럼의 대화가 아닌 뭔가 느긋하고 평범한 그런 모습의 대화가 이어진다. 죽음도 탄생도 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일상이지만 당사자에게는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라 생각이 된다.
책의 마지막을 덮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과연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을 했는가? 물론 아직 나이가 불과 30대이지만 당장 내일 죽을지 100년을 더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항상 이런 가정 같은 것을 해보지 않는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여타의 종교에서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긴 한데 지금은 어떤 것을 할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결론만 살짝 이야기하면 주인공은 마지막에 죽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이 마무리할 준비를 계속 한다고 하니 주인공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는 어떤 결말을 내고 싶었을까? 열린 결말로 마무리는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